거룩한 금기로 둘러친 피난처: 딸아이의 품속과 하나님의 지독한 편애 (레위기 12장)
레위기 12장은 현대의 독자에게 가장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본문 중 하나입니다. 한 여인이 목숨을 걸고 새 생명을 낳았는데, 성경은 그 거룩한 탄생의 자리에 찬가 대신 서슬 퍼런 선고를 내립니다. 산모는 부정하다 선언되고, 성소 출입이 막히며, 거룩한 것에는 손도 대지 못합니다. 아들을 낳으면 33일, 딸을 낳으면 그 두 배인 66일 동안 정결의 날을 채워야 합니다. 현대의 평등 감각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불균형과 차별입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일이 창세기 1장의 가장 으뜸가는 축복이었을진대, 왜 율법은 이 어머니의 자리에 죄인과도 같은 격리의 굴레를 씌웠을까요.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정직하게 응시해 온 사람이라면, 차가운 법 조문 이면에 도사린 인간 본성의 서늘한 악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대 근동의 척박한 광야와 농경 사회에서 한 사람의 태어남은 곧 생존을 위한 노동력의 증가였습니다. 노동의 무게로 인간의 쓸모가 결정되던 세상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치는 갈라졌습니다. 손 하나가 아쉽고 하루치 노동이 생사를 가르던 시대에 갓 해산하여 뼈마디가 벌어지고 피를 흘리는 여인은 존중받는 어머니이기 이전에 언제든 일터로 내몰릴 수 있는 취약한 노동력이었습니다. 만약 율법이 "산모를 배려하고 쉬게 하라"는 유약한 도덕적 권고나 인도주의적 훈계에 그쳤다면 어떠했을까요. 사람의 탐욕과 생존의 잔혹함은 언제나 상식을 비웃으며 그 선의를 짓밟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잔인한 탐욕을 꺾기 위해 그 누구도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장치, 곧 종교적 경외와 공포의 금기인 부정의 빗장을 걸어 잠그셨습니다. 스스로 부정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산모를 밭고랑으로 끌어낼 가부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법조문은 부정이라 썼지만, 그것은 세상의 착취로부터 여인을 지켜낸 가장 견고하고 자비로운 피난처였습니다.
이 거룩한 방패막이의 절정은 딸아이를 낳았을 때 드러납니다. 아들을 낳았을 때는 33일이었던 보호의 시간이 딸아이를 낳자 그 곱절인 66일로 늘어납니다. 겉보기에 이것은 여성에 대한 겹겹의 차별처럼 보이지만 갓 태어난 아기와 그 엄마로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은총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딸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고 실망을 감추지 못하던 가부장적 공기 속에서 하나님은 그 어린 생명에게 그리고 그 엄마에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안겨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노동과 가사의 의무로부터 법적으로 완전히 면제된 어머니의 온전한 품입니다. 남자아기보다 서른세 날을 더 아기는 세상의 그 어떤 부역도 침범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심장 소리를 듣고 젖을 빱니다. 시대의 구조적 불평등을 단번에 뒤엎을 수 없었던 역사의 시간에서 하나님은 차별받을 딸아이에게 어머니의 온전한 사랑을 두 배로 독점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셈법을 조용히 비웃으시는 하나님의 지독한 편애이자 시쳇말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여인이 흘리는 산혈(産血)의 자리에 부정의 선언이 머무는 까닭 또한 깊은 신학적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부정이란 도덕적 악이라기보다는 생명의 근원인 피가 쏟아져 나오며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피조물의 취약성을 뜻합니다. 새 생명을 세상에 밀어 넣는 산모의 해산은 죽음의 문턱을 가장 가까이 스치고 지나가는 거룩하고도 위태로운 사건입니다. 마침내 기한이 차 여인이 제단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죗값을 치르는 형벌이 아니라 죽음의 접경지대와 고립의 피난처를 무사히 통과하여 다시 삶의 공동체로 걸어 나오는 여인을 향한 공적이고 거룩한 생명의 확인서였습니다. 제사장은 여인의 정결을 선언함으로써 그녀를 온전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시켰습니다. 더욱이 어린 양을 마련할 힘이 없는 여인에게는 산비둘기 두 마리로 족하다고 문턱을 낮추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여전히 생산성과 효용성으로 사람의 무게를 재고, 약자를 손쉽게 도구화하려 듭니다. 그러나 레위기 12장의 하나님은 가장 쓸모없다 여겨지던 자리에 가장 견고한 사랑의 성벽을 두르시는 분입니다. 차가운 율법의 조문 뒤편에서 가장 연약한 모녀를 품어 안으셨던 그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는 오늘도 세상의 효율성에 상처 입은 우리를 당신의 완전한 품속으로 불러 모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