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 앞에서의 물러섬: 율법의 조문을 넘어선 정직한 경외 (레위기 10장)
1. 잿더미가 된 속죄제물과 모세의 노여움
제단의 불길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서늘한 침묵과 함께 타다 남은 재만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갓 제사장으로 위임받아 성소에 섰던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불에 삼켜져 진영 밖으로 실려 나간 바로 그날, 성막에는 또 한 번의 당혹스러운 충돌이 일어납니다.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의 숫염소가 제사장의 거룩한 식탁에 오르지 못하고 온통 잿더미로 불타버린 것입니다. 규정대로라면 제사장은 그 고기를 거룩한 곳에서 먹음으로써 백성의 허물을 짊어지고 거룩한 속죄를 완결해야 했습니다. 모세의 목소리에 서린 서슬 퍼런 노여움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이미 두 아들이 불경으로 목숨을 잃은 마당에 남은 자들마저 또 다른 율법의 조문을 어겼으니 말입니다.
2. 길들여지지 않는 거룩과 자의적 열심의 파멸
그러나 거룩함(Holiness)이란 인간이 정교하게 고안한 의식의 틀 속에 안전하게 가두어둘 수 있는 애완동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길들여지지 않는 거대한 전기와 같아서 경외심 없는 자의 손길에는 치명적인 파멸을 가져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비극은 그들이 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을 너무 가볍게 여겨 제 손으로 통제하려 들었던 종교적 월권에 있었지 않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담은 낯선 불로 제단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려 했으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자의적 열심이란 결국 자신을 태우는 불씨가 될 뿐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죽음의 이유도 억지해석일 수 있습니다.
3. 찢긴 가슴의 아비와 거룩한 두려움의 물러섬
반면에 남은 아들들을 감싸 안은 아론의 대답은 전혀 다른 심연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 내게 이런 비극이 닥쳤는데, 내가 어찌 속죄제물을 먹고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일 수 있겠는가." 두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비는 제사장의 권리와 거룩한 축제의 떡을 차마 입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아론은 즉사하는 아들들을 목격했을 수도 있습니다. 찢긴 가슴과 부정해진 슬픔의 한복판에서 그는 거룩함을 능숙하게 집행하는 제사장 흉내를 내는 대신 철저히 무력한 인간으로 물러서기를 택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제사 규정 무시를 오만하다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 앞이지만 감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룩한 음식을 취할 수 없었던 정직한 자기 비하와 거룩한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4. 조문을 넘어선 하나님의 긍휼과 영혼의 무게
놀랍게도 성경은 모세가 아론의 이 말을 듣고 "자기가 보기에도 그렇겠다"라며 좋게 여겼다고 기록합니다. 굳어 있는 법전의 조문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체크리스트의 빈칸을 빠짐없이 채워 넣는 기계적인 제사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사는 거룩함의 현존 앞에서 자신의 깨어짐을 숨기지 않는 상한 마음(시 51:17)입니다.
소달구지에 실려 흔들리던 언약궤를 반사적으로 붙잡았다가 죽임을 당한 웃사의 손길이 하나님의 임재를 물건처럼 다루었던 공동체의 안일함을 폭로했다면, 쫓기던 다윗이 굶주린 부하들을 위해 성소의 진설병을 먹고도 살아남았던 사건은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형식적 금기를 압도함을 보여줍니다. 거룩함을 제 뜻대로 휘두르려는 인간의 당돌한 전진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거룩함의 엄위 앞에 무릎 꿇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정직한 떨림은 오히려 생명을 살려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규칙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거룩을 대하는 영혼의 정직한 무게를 달아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