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장: 원망의 시장(Market)에서 신뢰의 광야로
출애굽기 16장: 원망의 시장(Market)에서 신뢰의 광야로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출애굽기 16:3, 새번역)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 지 불과 한 달, 이스라엘은 다시 이집트를 그리워합니다. 그들이 그리워한 것은 노예로서의 신분이 아니라, 확실하게 보장되던 고기 가마와 배부른 빵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갈구하는 확실성, 즉 '시장(Market)의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대가를 지불하고 얻거나, 혹은 노동을 통해 미래의 안정을 비축할 수 있는 시스템, 그것이 그들이 기억하는 이집트의 안락함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광야는 내일의 양식이 보장되지 않는, 그래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결핍의 공간일 뿐입니다.
볼프강 쇼베르트(Wolfgang Schoberth)는 현대 신학이 사람들의 종교적 필요를 만족시키려는 시장주의적 태도를 취할 때, 신앙은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한다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배고픔(Needs)을 채워줄 공급자로만 인식했습니다. 더 나은 공급을 주지 않는 신이라면, 차라리 배부른 노예 생활을 제공했던 이집트의 신들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쌓아둘 수 없는 양식, 만나를 주십니다. 만나는 저축(Accumulation)과 소유(Possession)를 거부합니다. 그것은 오직 '오늘'을 살게 하는 은혜이며, 내일의 안전을 내가 확보하려는 욕망을 무력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원망의 시장에서 끌어내어 신뢰의 광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쇼베르트가 제안한 '신뢰의 발견술(Heuristik des Vertrauens)'은 바로 이 광야에서 시작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매일 아침 들판에서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의 절정은 '안식일'입니다.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29절) 안식일은 단순한 노동의 중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는 생존의 두려움과 "더 많이 소유해야 안전하다"는 시장의 탐욕에 대한 '거룩한 저항'입니다. 엿새 동안 내리는 만나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 자만이 일곱째 날 빈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인 용기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의 긴장 속에 있습니다. 주일은 안식의 날이라지만, 여전히 관계의 갈등과 사역의 피로가 우리를 짓누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 우리 또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타원형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과 희미함 때문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나(Manna)는 "이것이 무엇이냐?(Man-hu)"라는 질문에서 유래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은혜, 쌓아둘 수도 없고 내일이면 사라지지만, 오늘 나를 살게 하는 그 신비한 은혜가 우리를 살립니다. 광야는 결핍의 장소가 아니라, 내 힘을 빼고 하나님께 온전히 기대는 법을 배우는 '신뢰의 학교'입니다. 그 학교를 통과한 자들만이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