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0장: 하나님의 손바닥 위, 완악함조차 구원의 재료가 되다
출애굽기 10장: 하나님의 손바닥 위, 완악함조차 구원의 재료가 되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가거라. 그와 그 신하들이 고집을 부리게 한 것은 나다. 이것은 내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온갖 이적을 보여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 내가 주님임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출애굽기 10:1-2, 새번역)
출애굽기 저자는 여기서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던집니다. 하나는 파라오처럼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교훈이고, 다른 하나는 그 파라오의 교만마저도 하나님의 철저한 통제 아래 있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 두 가지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시면서 동시에 그 마음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순적 긴장은 인간이란 존재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알면서도, 끝내 옳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비극적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머리로는 재앙의 원인을 알면서도, 행동으로는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파라오의 모습은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 내면의 아크라시아(Akrasia)를 비춥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거대한 손바닥 위에서 일종의 롤 플레이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설령 이 견해가 인간을 로봇처럼 여긴다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무대 위에서 파라오와 모세는 본질상 같은 인간이나 맡은 배역이 다를 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열 번의 재앙을 채우셨을까요?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고 당신의 영광을 알리기에 가장 적절한, 역설적인 의미의 토브(Tov, 좋았더라)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라오가 열 번의 재앙을 버텨낸 그 끈기도 대단하지만, 훗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보여준 불순종들 또한 그에 못지않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인간은 참 대단한 의지를 가졌으나, 하나님의 컨트롤(은혜)이 없으면 그 에너지를 오직 자신을 파괴하는 데 쏟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담이나 그리스도처럼 구원사의 '대표(Representation)'일 뿐,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언약의 대상은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피조물을 향해 있다는 것 말입니다. 파라오를 악역으로 세우시면서까지 하나님이 보여주려 하신 재앙의 이적의 최종 목적은 누군가의 파멸이 아니라, 온 세상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되는 우주적 회복입니다.
인간의 어떤 완악함도, 역사 속의 어떤 비극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능성은 죄를 짓는 데 탁월하지만, 하나님의 가능성은 그 죄마저도 구원의 재료로 삼으시는 데 탁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컨트롤 타워 안에 갇히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그분의 장악하심만이 위태로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유일한 안전장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