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율법보다 먼저 온 하나님의 진심 (갈라디아서 3장)
약속, 율법보다 먼저 온 하나님의 진심
갈라디아서 3장
17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하지 못합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1. 율법, 약속에 대한 인간의 응답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거대한 법정 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그의 핵심 논증은 로마서 4장처럼 시간적으로 선후를 구분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보다 430년이나 앞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중에 생긴 법이 먼저 체결된 상속 언약을 무효화할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변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율법은 약속과 경쟁하거나 그것을 대체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하나님의 선행적(先行) 은혜, 즉 출애굽이라는 구원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감격에 찬 신앙고백적 '응답'이었다. 성서비평적 결과를 수용하자면, 망해버린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로부터 귀환하며 역사 바로세우기를 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겠습니다"라는 거룩한 결단이 율법의 정신이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주신 것은 그들의 고백을 기쁘게 받으시고 인준하신 사랑의 표지일 것이고, 그만큼 그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담아 다짐하고 고백한 결과적 서술이다. 응답이 초대를 무효화할 수 없듯 율법은 결코 약속을 폐할 수 없다. 율법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귀한 도구이지만 그 본질상 약속보다 먼저일 수도, 그 약속을 넘어설 수도 없다.
2. 몽학선생의 역할, 그 명예로운 한계
그렇다면 율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바울은 율법을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가정교사)'(24절)이었다고 정의한다. 몽학선생은 주인의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를 보호하고 훈육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결코 무가치한 직무가 아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드러내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구원자를 간절히 기다리게 만드는 명예로운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문제는 상속자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몽학선생의 규칙 아래 머물려 하는 것이다. 믿음이 온 이후에도 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으려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바울은 "이제 율법의 감시 아래 갇혀 있을 때가 끝났다!"(23절)고 선포한다. 한때 우리를 보호하던 울타리가 이제는 자유를 속박하는 감옥이 되게 하지 말자. 몽학선생의 명예로운 퇴장을 인정하고 이제 아들로서 당당히 유업을 누리라는 것이 바울의 간절한 호소이다.
3. 그리스도를 옷 입다, 모든 경계를 넘어선 새 창조
믿음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삶의 외적 표지는 세례다. 바울은 우리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었다"(27절)고 선언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는 표현은 우리의 윤리적 실천이나 결단에 앞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초대'이자 '선포'이다. 세례의 물속에서 옛사람은 죽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라는 새 옷을 입히신다. 이는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새로운 정체성이다. 이 새 옷은 세상의 모든 경계선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다"(28절). 할례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만드는 율법의 표지였다면, 세례는 그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복음의 표지다.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버지'로 부르신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성취되는 순간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장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수평적 장벽까지 무너뜨린 사건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할 때, 우리는 혈통이나 율법 준수가 아니라 약속을 따라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 하늘의 상속자들이 된다. 이것이 율법을 넘어 믿음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심이고 약속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강력하게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