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그 자체가 증명서이다 (갈라디아서 1장)
복음, 그 자체가 증명서이다
갈라디아서 1장
1 사람들이 시켜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명하심으로써 사도가 된 나 바울이,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1. 자격증 없는 사도의 권위
갈라디아서의 첫머리에서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듯한 격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직을 선언한다. 그의 이력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초라하다.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임명장도, 열두 제자처럼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이력도 없다. 그가 내세우는 유일한 자격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를 임명하셨다'는 개인의 확신뿐이다. 이 '자기 증명'은 언뜻 오늘날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교주들의 자기 선포와 외적으로 닮아 보인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 바로 삶의 궤적이 그들의 말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자칭 교주들의 삶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고 부를 축적하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으로 귀결된다. 반면 바울의 삶은 매 맞고, 굶주리고, 핍박받고, 마침내 순교에 이르는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그 자체였다. 예수의 신학은 영광의 신학일까 십자가의 신학일까? 바울의 삶은 그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그 누구도 위조할 수 없는 살아있는 자격증이었다.
2. 증명서보다 강력한 신앙고백
바울은 왜 이토록 자신의 권위를 변호해야 했을까? 갈라디아 교회를 뒤흔들던 거짓 교사들은 '예루살렘'과 '원조 사도들'이라는 인간적 권위, 즉 '자격증'을 무기로 바울을 공격했다. 그들의 전략은 바울의 권위(Who?)를 깎아내려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What?)을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이 교묘한 공격에 맞서 바울은 논쟁의 판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는 자신의 '자격증'을 변호하는 진흙탕 싸움에 뛰어드는 대신, 논쟁의 기준을 '사람'에게서 '복음'으로 옮겨온다. 바울은 심지어 자기 자신이나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포한다(1:8-9). 이는 복음의 권위가 전달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시금석으로 4절의 간결한 신앙고백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이것이 기준이다. 사람의 배경이나 예루살렘과의 관계가 아니라, 이 순수한 신앙고백의 내용이 모든 가르침의 진위를 판별하는 유일한 증명서이다.
3. 치명적인 유혹, '복음 + 알파(α)'
거짓 교사들이 들고 온 '다른 복음'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순수한 복음에 무언가를 더하려는 치명적인 유혹, '복음 + 알파(α)'였다. 그들이 내세운 '할례'라는 '알파'는 신자들 사이에 구별과 서열을 만드는 [[영적 계급장]]이었다. 은혜의 공동체는 이 계급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고, 순식간에 차별과 경쟁의 장으로 변질된다. 이 '영적 계급장'은 그것을 발급하고 관리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재료가 된다. 4절의 복음은 구원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에 근거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지만, '알파'의 추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너의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은혜에 대한 인간의 본성적 불안감과 영적 교만을 파고드는 이 유혹의 역사는 실로 유구하다. 바울은 이 '알파'가 단순한 부가 사항이 아니라 복음의 심장을 겨누는 독극물임을 정확히 간파했다. 그렇기에 그는 타협 없이 저주를 선포하며(9절), 오직 십자가의 은혜라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복음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