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전 드라마: 인간의 공식을 해체하고 비워내신 사랑의 서사시 : 창세기 49, 50장 묵상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 인간의 공식을 해체하고 비워내신 사랑의 서사시

창세기 49-50장 묵상


주님, 제가 주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창세기 49:18, 새번역)

요셉이 자기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곧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창세기 50:24, 새번역)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를 시키면서 일렀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실 날이 온다. 그 때에 너희는 나의 뼈를 이 곳에서 옮겨서, 그리로 가지고 가야 한다." (창세기 50:25, 새번역)


1. 엇갈린 손을 넘어, 인생의 공식을 해체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48장에서 야곱의 '엇갈린 손'은 그의 영적 통찰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이제 49장에 이르러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과 예언을 남기며, 이 '엇갈린 손'의 원리가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관통할 하나님의 섭리임을 확증합니다.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 에서가 아닌 야곱, 르우벤이 아닌 유다(왕권)와 요셉(축복의 중심)에게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택은, 성서가 인간 사회의 익숙한 장자권이나 논리를 따르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성서는 인생의 선후와 경중이라는 우리의 고정된 시선 대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흐름을 주목하게 합니다.

이러한 인생 공식의 해체는 야곱의 유언 중간에 불현듯 터져 나오는 "주님, 제가 주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49:18)라는 고백 속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아들들의 미래를 내다보며 인간적인 계획이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구원(예슈아, יְשׁוּעָה)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하는 야곱의 외침은, 모든 인간의 단 하나의 간구와 희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선택과 구원은 인생의 영역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며, 인간의 모든 가치와 규칙은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전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2. 요셉의 유언, 죽음을 넘어선 약속의 시선

야곱의 생이 끝난 후, 창세기의 마지막 장은 요셉의 유언으로 장식됩니다.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나는 곧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50:24)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며 자신의 뼈를 약속의 땅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합니다(50:25).

이것은 단순한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소망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화려한 미라 문화와 풍요로운 삶 속에서 요셉의 해골은 후손들에게 "여기는 우리가 영원히 머물 땅이 아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침묵의 설교이자 영적 항해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야곱의 '기다림'과 요셉의 '기억함'은 이스라엘 신앙의 두 기둥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그 구원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그것을 후손들에게 가시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은 믿음의 세대를 이어가는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3. 유다와 요셉, 그리고 가장 큰 역전의 드라마

우리는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 속에서 메시아의 계보가 요셉이 아닌 유다에게로 이어진다는 놀라운 사실에 직면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흠 없는 삶과 이방 땅에서 자기 민족을 구원한 요셉이야말로 구원자의 조상으로 마땅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제들을 선동하여 요셉을 팔고, 며느리 다말과의 사건으로 허물을 지닌 유다의 혈통을 통해 궁극적인 구원자를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역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의로움이나 자격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와 회개를 통한 회복에 근거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선택입니다. 고난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요셉'의 흐름과 왕권을 통해 다스리고 궁극적 구원자(메시아, 실로)를 예표하는 '유다'의 흐름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하나로 성취됩니다. 고난받는 종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고정관념과 공식을 해체하고 비워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완벽하게 드러냅니다.

4. 하나님의 케노시스, 아름다운 시작과 영광스러운 끝

창세기 묵상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사람이 쓰고 편집한 이 성서가 어째서 거룩한가? 여기에 '하나님의 케노시스(Kenosis, 자기 비움)'라는 신비가 자리합니다. 성경의 거룩함은 성육신의 신비와 그 구조를 같이 합니다. 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나님, 말씀(Logos)이신 분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있는 유한한 인간 예수의 몸을 입으셨듯, 영원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진리가 유한한 인간의 '언어'와 '글'의 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개인에게 찾아오시고(선택의 케노시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일하시며(역사의 케노시스), 예수라는 한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성육신의 케노시스), 마침내 인간의 언어로 쓰인 한 권의 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성경의 케노시스). 이 모든 과정은 자신을 비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입니다.

창조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는 선포와 함께 아름답게 시작되었듯, 그분의 거대한 구원 역사의 종말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사망도 생명도, 천사나 권세자들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시선과 결정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조차도 그분의 궁극적인 사랑과 공의의 충만함 앞에서 완전히 해체되고 새롭게 재구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모든 기대를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그: #창세기49장 #창세기50장 #하나님의선택 #역전의섭리 #야곱의간구 #요셉의유언 #약속의땅 #하나님의케노시스 #성경의거룩함 #유다와요셉 #메시아족보 #아름다운종말 #하나님의주권 #구원의역사 #창조와종말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성사(Sacramentum, 성례)

책임의 원칙 (요 20:19-31)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통해 영원하게 인식되는 인생 (마 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