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엇갈린 손에 담긴 하늘의 질서 : 창세기 48장 묵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엇갈린 손에 담긴 하늘의 질서
창세기 48장 묵상
내가 너를 보려고 여기 이집트로 오기 전에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낳은 두 아이는, 내가 낳은 아들로 삼고 싶다. 르우벤과 시므온이 나의 아들이듯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나의 아들이다. (창세기 48:5)
그는 오른손을 펴서,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었다. 므낫세가 맏아들이었지만, 그는 이렇게 손을 엇갈리게 얹었다. (창세기 48:14)
그의 아버지는 거절하면서 말하였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겨레를 이루고, 그도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우가 그 형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자손에게서 여러 겨레가 나올 것이다." (창세기 48:19)
나는 너의 형제들보다 너에게, 내가 나의 칼과 활을 가지고 아모리 사람의 손에서 빼앗은 세겜 땅을 한몫으로 더 준다. (창세기 48:22)
1. 언약의 셈법, 두 배가 된 은혜의 몫
죽음을 앞둔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족장의 마지막 언약적 행위입니다. 이 입양을 통해 요셉은 실질적인 장자의 명분, 즉 '두 배의 몫'을 받게 됩니다. 이는 훗날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특수 임무를 위해 땅의 기업에서 제외될 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는 거룩한 수를 온전히 채우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복선이 됩니다. 인간의 셈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 한 가정의 상속 절차를 통해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엇갈린 손, 본성인가 통찰인가
그리고 운명적인 축복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야곱은 요셉의 제지를 뿌리치고 의도적으로 손을 엇갈려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평생 둘째로서 장자를 이기려 했던 야곱의 옛 본성이 마지막 순간에 다시 드러난 것일까? "사람의 본성은 꺾이거나 컨트롤 될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라는 탄식처럼 말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본성의 재현이 아니라, 평생의 씨름 끝에 얻은 영적 통찰의 발현입니다. 육신의 눈은 어두워졌지만, 그의 영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습니다. 젊은 날의 야곱이 자신의 꾀로 형을 속였다면, 노년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는 그의 대답은 인간적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는 이의 확신 가득한 선포입니다. 야곱의 엇갈린 손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장자권이 땅의 질서라면, 하늘의 질서는 그 장자권을 역행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과 순서를 역행합니다.
3. 빛의 그림자, 밀려난 자의 서러움을 안고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입니다. 하늘의 질서가 땅의 질서를 뒤엎을 때, 밀려난 이의 서러움이 생겨납니다. 에서가 그러했고, 므낫세 또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은 므낫세 역시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될 것"이라 축복합니다. 선택받지 못함이 곧 버려짐, 배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자비로운 선언입니다. 땅의 질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배제와 쫓아냄으로써 하늘의 질서를 수호한다는 것은 미명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서러움의 그림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아집니다. 그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밀려난 자'가 되셨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가장 큰 서러움을 감당하심으로써 자격 없는 둘째와도 같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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