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기억의 땅에서 시작된 여정 : 창세기 46장
거룩한 기억의 땅에서 시작된 여정
창세기 46장 묵상
이스라엘이 식구를 거느리고, 그의 모든 재산을 챙겨서 길을 떠났다. 브엘세바에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다. 그 밤에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야곱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 곧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고, 반드시 너를 다시 이끌어 내올 것이다. 네가 숨을 거둘 때에는, 요셉이 너의 눈을 직접 감겨 줄 것이다." (창세기 46:1-4, 새번역)
1. 첫걸음, 기억의 땅에 발을 딛다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는 거대한 여정의 첫걸음을 떼며 길을 멈추어 섭니다. 그가 멈춘 곳은 '브엘세바'였습니다. 창세기의 편집자가 굳이 이 지명을 기록한 데에는 깊은 의도가 있습니다. 브엘세바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받았던 '거룩한 기억이 축적된 땅'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로 떠나는 야곱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깃든 과거, 즉 '회복의 시공간'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자신의 여정을 아룁니다. 이는 마치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 부모님의 집에 들러 인사를 올리는 것과 같은 영적 효(孝)의 행위입니다. 우리의 여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지의 '애굽'으로 발을 뗄 때, 우리는 신앙의 '브엘세바'로 나아가 거기에 축적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되새기며 우리의 발걸음을 그분께 아뢰어야 합니다.
2. 울려 퍼지는 선율, '함께하심'의 약속
거룩한 기억의 땅 위에 마침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야곱아, 야곱아!" 아담이 두려워 나무 사이에 숨었던 이래로 왜곡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이 야곱의 즉각적인 "제가 여기 있습니다!"를 통해 온전히 회복되는 장면입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오랜 프로젝트가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야곱에게서 아름답게 열매 맺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회복의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바로 '함께하심(Immanuel)'이라는 약속의 선율입니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고." 하나님은 "가라"고 명령만 하지 않고 약속의 땅을 떠나는 그 불안한 여정에 동행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약속은 훗날 온 인류를 향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야곱이 들었던 이 음성은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약속의 메아리입니다.
3. 역설의 무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하나님과의 소통을 회복한 야곱이 향하는 애굽(이집트)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목축을 천시하는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세상이 보기에 가장 연약하고 심지어 '불가촉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 모습으로 세상의 중심부로 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즉 '역설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라 네가 가장 작기 때문이라"(신 7:7) 말씀하시며 약한 자를 통해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십니다. 애굽 사람들이 경멸했던 '목자'라는 정체성은 훗날 모세와 다윗을 거쳐 마침내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이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버린 돌로 구원의 모퉁잇돌을 삼는 분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결코 절망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역설의 무대가 됩니다. 우리의 삶이 애굽과 같은 세상 속에서 비록 목자와 같이 낮은 모습일지라도 '함께하심'의 약속을 붙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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