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기도, 은혜의 서막 : 창세기 43장
벼랑 끝의 기도, 은혜의 서막
창세기 43장 묵상
"내가 그의 안전을 담보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의 일을 나에게 책임지우십시오.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하면, 그 죄를 내가 평생 달게 받겠습니다." (창 43:9, 새번역)
"너희들이 그 사람 앞에 설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감동시키셔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게 해주시기를 빌 뿐이다. 그가 거기에 남아 있는 아이와 베냐민도 너희와 함께 돌려보내 주시면 좋으련만! 자식들을 잃게 되면 잃는 것이지!" (창 43:14, 새번역)
1. 아버지의 침묵, 벼랑 끝에서 열리다
기근의 고통이 뼈를 깎는 듯이 심해졌지만,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주지 못한 채 침묵합니다. 그의 침묵은 단호한 믿음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아들만은 잃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통제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베냐민은 그에게 죽은 아내 라헬을 기억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요셉을 잃은 트라우마가 빚어낸 집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야곱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식량이 바닥나고 모든 가족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자, 그의 완고한 침묵은 마침내 깨어집니다. 그의 결단은 위대한 신앙의 도약보다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벼랑 끝에서 내몰린 인간의 처절한 항복이었습니다.
2. 유다, 보증으로 서다
과거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했던 유다가 이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섭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베냐민을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의 죄를 온몸으로 책임지려는 회개의 열매라 할 것입니다. 형제를 돈과 맞바꾸었던 그가 이제 형제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보증인이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변화가 어떻게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유다의 이 변화는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의 위대한 복선이 됩니다.
3. "잃으면 잃으리이다": 주권에의 순복
야곱의 기도는 우리 신앙의 역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계획과 통제가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매달리는 마지막 외침입니다. "자식을 잃게 되면 잃는 것이지!"라는 그의 탄식은 체념처럼 들리지만, 실은 내 삶의 결과를 나의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넘겨드리는 가장 깊은 차원의 신앙고백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야곱은 믿음의 영웅이어서라기보다는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 수밖에 없는 우리의 대표가 됩니다. 우리는 야곱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 연약함 때문에 그의 뒤에 줄을 섭니다. 야곱의 믿음이 아니라 그런 야곱을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43장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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