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 제국의 꿈을 깨우다: 창세기 41장 묵상
하나님의 때, 제국의 꿈을 깨우다
창세기 41장 묵상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꿈 하나를 꾸었는데, 그것을 해몽할 사람이 없다. 나는 네가 꿈 이야기를 들으면 잘 푼다고 들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그것은 저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임금님께 평안을 주시는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창 41:15-16, 새번역)
둘째는 "내가 고생하던 이 땅에서, 하나님이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셨다" 하면서, 그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다. (창 41:52, 새번역)
1. 하나님의 주권, 역사의 무대에 서다
만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잊혀진 시간,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잊은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40장의 꿈이 감옥이라는 개인적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면, 41장의 꿈은 이집트 제국이라는 역사의 무대 한가운데서 펼쳐집니다. 이 꿈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은 파라오의 꿈, 그의 설명, 요셉의 해몽을 통해 세 번이나 내용을 반복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계획임을 선포하는 문학적 장치입니다. 이방의 왕,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던 파라오조차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꿈을 꾸고 불안에 떱니다. 이로써 창세기는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온 열방의 역사와 운명까지도 다스리십니다.
2. 예언자의 자세, 통로인가 근원인가
파라오 앞에 선 요셉의 모습은 40장보다 한층 더 깊어진 성숙을 보여줍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혜자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앞에서 "그것은 저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라고 선을 긋습니다. 그는 지혜의 '근원(source)'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흘러가는 '통로(channel)'임을 분명히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여 권력을 얻으려는 세상의 방식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길입니다. 오랜 고난은 그에게서 자아를 드러내려는 모든 욕망을 깎아내고 오직 하나님만을 드러내는 투명한 그릇으로 빚어냈습니다. 파라오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며 감탄한 것은 자신을 완전히 비워 하나님으로 가득 채운 요셉의 영성이었습니다. 근원이 아닌 통로, 이것이 바로 참된 종, 참된 예언자의 유일하고 올바른 자세입니다.
3. 경계를 넘어서는 결혼
요셉의 이야기는 그가 이집트의 총리가 되며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곧바로 신학적 긴장을 유발하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요셉이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 아스낫과 결혼한 것입니다. 후대의 율법이 그토록 금했던 이방인과의 통혼, 특히 우상숭배의 중심에 있는 제사장의 가문과의 결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세운 경계와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의 차이를 봅니다. 인간은 혈통, 민족, 종교의 경계를 통해 순수성을 지키고 우월감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경계를 넘어 일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의 혈통적 순수성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영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였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심장부에서 태어난 아들들의 이름을 지으며 "하나님이 나의 고난을 잊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번성케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언약의 하나님께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4. 불변의 조항, 은혜로 쓰인 언약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훗날 이스라엘의 12지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이방의 땅에서, 이방 여인의 몸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언약 백성의 핵심이 되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놀랍고 주권적인지를 보여주는 '불변의 조항'과도 같습니다. 이는 인간의 실패(형들의 배신)나 역경(이집트에서의 고난), 혹은 인간이 세운 경계(이방인과의 결혼)에 의해 결코 무효화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봉인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자손의 약속을 성취하고 확장해 가십니다. 이는 마치 기생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을 통해 다윗의 계보를 이어가신 것처럼,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의 기준과 상식을 뛰어넘는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증거합니다.
5. 므낫세와 에브라임, 십자가와 부활의 서사
요셉이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요약했듯 이 두 이름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 므낫세,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고백은 십자가의 복음을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고난과 죄, 아버지 집과 같았던 옛사람의 기억을 깨끗이 잊게 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 '번성하게 하셨다'는 고백은 부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받던 바로 그 자리, 죽음과 절망의 땅에서 새 생명으로 일어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요셉은 굶주리는 세상을 향해 생명의 떡을 나누어주는 구원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으로 굶주린 온 인류를 위한 영원한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창세기 41장은 요셉의 인생 역정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고난의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온 세상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삼는 하나님의 위대한 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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