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시간 속에서 꾸는 하나님의 꿈 : 창세기 40장 묵상

잊혀진 시간 속에서 꾸는 하나님의 꿈

창세기 40장 묵상


감옥에 갇힌 두 사람 곧 이집트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이,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의 내용이 저마다 달랐다. (창 40:5, 새번역)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해몽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네."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창 40:8, 새번역)


1. 하나님의 언어, 꿈

요셉 이야기의 동력은 '꿈'입니다. 자신의 꿈으로 인해 구덩이에 던져졌던 소년은, 이제 타인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풀어내는 사람이 됩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인지 구조에 당신의 뜻을 새겨 넣으시는 신비한 계시의 통로입니다. 요셉은 이 사실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의 고백인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말 속에는 과거 자신의 꿈을 자랑하던 미성숙함이 아닌 모든 지혜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깊은 겸손이 담겨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절망의 공간도 하나님과 요셉 사이의 내밀한 소통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2. 진실을 감당하는 무게

요셉은 두 시종장의 꿈을 해몽하며 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다른 한 사람에게는 죽음을 선포합니다. 특히 빵 굽는 시종장에게 사형을 예고하는 그의 모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차갑게까지 느껴집니다. 이는 인간미의 상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랜 고난을 통해 빚어진 '하나님과의 단단하고 질긴 관계'의 증거입니다. 그는 이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하는 대신 생명이든 죽음이든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실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려는 예언자적 성숙에 이른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게 두지 않으려는 이 영적 책임감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깊은 신뢰 관계 속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3. 잊혀진 2년, 침묵의 시간

그러나 진실을 선포한 대가는 즉각적인 보상이 아닌 '잊혀짐'이었습니다. 술 맡은 시종장은 요셉을 잊었고, 그의 마지막 인간적인 희망의 동아줄은 끊어졌습니다. 이 2년의 시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연단의 시간'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하지만 요셉에게 그것은 희망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체념의 시간', 감옥에서 나가는 것조차 더 이상 기도의 제목이 되지 못하는 영혼의 겨울이었을지 모릅니다. 매일 아침 절망으로 눈을 뜨며 그는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를 온몸으로 겪어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사람을 의지하려는 그의 마지막 미련마저 끊어내시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도록 그를 빚어 가셨습니다.

4.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이들을 위한 신학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해야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결국 성공한 '생존자'의 논리가 아닐까요? 역사 속에는 요셉처럼 극적인 반전을 경험하지 못하고 억울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수많은 '이름 없는 요셉들'이 존재합니다. 20세기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처럼 말입니다. 그의 삶과 죽음 앞에서 '고난은 연단'이라는 공식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립니까. 이는 어느 하나의 신학이나 경험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 모름의 영역'이 분명 존재하며, 바로 그곳이 믿음이 자리하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이들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 자신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서입니다.

5. 부활, 하나님의 최종적인 꿈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살아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조롱과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그는 인류의 모든 절망을 품고 죽으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이 땅에서 구원받은 요셉과 이 땅에서 죽임당한 본회퍼를 모두 껴안을 수 있습니다. 부활은 세상의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응답입니다. 이 땅에서 풀린 문제든, 풀리지 않은 채 남겨진 문제든, 모든 것이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정의 안에서 완성될 것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꿈'으로 시작되었다면, 부활이야말로 인류의 모든 비극적인 꿈들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꿈'이며 모든 피조물의 진정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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