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절망, 가장 가까운 동행 : 창세기 39장 묵상

가장 깊은 절망, 가장 가까운 동행

창세기 39장 묵상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안 일과 그 모든 재산을 맡겨서 관리하게 한 그 때부터, 주님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 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창 39:5, 새번역)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으나,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 (창 39:20-21, 새번역)


1. '함께하심'의 역설

요셉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의 유일한 뒷배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39장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므로(The LORD was with Joseph)"라는 구절을 반복하며 이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고난으로부터의 면제(exemption)를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통렬한 현실입니다. '함께하심'은 모든 것이 형통하고 복된 상태가 아니라, 가장 깊은 절망의 한복판을 통과할 때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 '동행(presence)'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의 삶이라 하여 모든 순간이 은혜와 축복일 수는 없습니다. 현실은 널 뛰듯 고점과 저점을 오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온몸으로 살아내야 할 신앙의 역설입니다.

2. 하나님의 '테두리', 성긴 듯 촘촘한 그물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한계일까? 추락하는 그 순간을 막아주지 못하는 무능함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즉 그분의 '테두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로 인한 권모술수를 즉각적으로 막지 않으십니다. 마치 성긴 그물처럼 악이 활개 칠 공간을 허용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그물은 결코 찢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악을 블랙홀처럼 당신의 거대한 계획 안으로 흡수하여, 그것의 파괴력을 무력화시키고 끝내 선한 목적의 재료로 사용하십니다. 성긴 듯 보이는 하나님의 허용이 실은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섭리의 그물입니다. 그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안전합니다.

3. 고백의 언어: 부재 속에서 임재를 배우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말은 고난의 한복판에서 외치기 힘든 '고백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모든 조각이 맞춰진 후에야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비로소 터져 나오는 간증입니다.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의 선한 목적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부재(不在)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을지 모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재 경험과 살아계심의 경험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습니다. 처절한 부재의 외침 끝에서 가장 깊은 임재를 만나는 것이 성서가 증언하는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닙니다. 모든 순례자가 통과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4.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공유하는 삶

우리는 요셉처럼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셉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과 명예의 '결과'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배신, 하나님의 침묵처럼 보이는 시간을 통과하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요셉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하나님의 테두리를 훌쩍 뛰어넘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지금 내가 갇혀 있는 억울한 감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절망의 구덩이가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가장 가까이 '함께' 계시는 장소이며, 그분의 가장 위대한 일을 준비하시는 무대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태그: #창세기39장 #요셉 #하나님의함께하심 #고난 #섭리 #하나님의테두리 #고백의언어 #과정 #임재와부재 #형통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성사(Sacramentum, 성례)

책임의 원칙 (요 20:19-31)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통해 영원하게 인식되는 인생 (마 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