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장 묵상 : 가장 부끄러운 족보, 가장 위대한 구원

가장 부끄러운 족보, 가장 위대한 구원

창세기 38장 묵상


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유다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고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내와 동침하였다. (창 38:1-2, 새번역)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서 말하였다. "그 여인이 나보다 더 옳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기로 하고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 38:26, 새번역)


1. 언약의 땅에서 벌어진 탈선

창세기 38장은 요셉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갑작스러운 막간극처럼 보입니다. 애굽으로 팔려 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신실함을 지켜나갈 요셉과 달리,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약속의 땅 언저리에서 탈선합니다. 그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아들들을 잃고, 며느리와의 약속마저 저버립니다. 요셉이 이방 땅에서 거룩함을 지킬 때, 언약의 장자권을 가진 유다는 약속의 땅에서 세속과 타협하며 언약의 대를 끊어버릴 위기를 자초합니다. 이 극명한 대조는 인간의 실패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 실패를 뚫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드러내는 창세기 편집자의 신학적 장치입니다.

2. 하나님의 '스크래치', 성육신의 신비

유다의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 그리고 이어지는 부끄러운 사건들은 훗날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질 왕의 족보에 지울 수 없는 '스크래치'를 남깁니다. 편집자는 역사적 예수를 몰랐을지라도, 다윗 왕조의 기원이 이처럼 부끄러운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흠결 때문에 예수의 품은 더 넓어집니다. 그의 피에 섞인 이방인의 흔적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허물고 열방을 품는 구원의 서막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성육신이 이미 하나님으로서는 감당하신 가장 큰 '스크래치' 아니던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죄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기 비하요, 거룩함의 훼손입니다. 성육신의 은혜는 감사히 받으면서, 그 은혜가 통과하는 지저분하고 불편한 인간의 족보를 외면하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위선적인 신앙일 것입니다.

3. 가장 낮은 곳에서 온 의로움, 다말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유다가 아니라 그의 며느리 다말입니다. 가나안 여인이자 과부였던 그녀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문의 대를 잇는 책임을 방기한 시아버지 유다와 달리 그녀는 목숨을 걸고 언약의 계보를 잇기 위해 투쟁합니다. 세상의 윤리로 보면 충격적인 그녀의 행동은 언약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재해석됩니다. 마침내 유다는 그녀 앞에서 "그 여인이 나보다 옳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세상이 버리고 멸시하는 자를 통해 당신의 의(義)를 세우시고, 가장 부끄러운 방법을 통해 가장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4. 회개의 위대함, 지도자의 탄생

자신의 인장과 지팡이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앞에서 유다는 변명하거나 권위로 짓누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 여인이 나보다 옳다." 이 짧은 고백이야말로 유다의 진면목이며,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가문이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돌이키는 '회개의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38장에서의 이 처절한 자기 고백은 훗날 44장에서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위대한 희생적 리더십의 씨앗이 됩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완벽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깨어짐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 앞에 무릎 꿇는 자입니다.

창세기 38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감추고 싶은 치부가 아닙니다. 인간의 죄악과 실패, 추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는 은혜의 기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완벽한 성인들의 명단이 아니라, 이처럼 깨어지고 부서졌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죄인들의 목록입니다. 바로 그 사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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