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속에 임하는 하느님의 나라 (눅 10:1-11, 16-20)
오늘 설교자는 누가복음 10:1-11, 16-20을 "하느님 나라, 우리 곁에 가까이"라는 제목을 설교했다.
설교자는 본문으로부터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자고 하며, 70(72)명이라는 당시로서는 대규모 제자 파송(35-36고을 파송)에 빗대어 하느님 나라의 넓은 범위를 그렸다. 하느님의 나라는 저 구석 동네에도, 존재감 없는 "그 사람"에게도 임한다.
광범위하게 파송 받은 제자들의 선포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하느님 나라의 가까움이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 예수의 선포 일성과 같은 맥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환대에서 가까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하느님 나라의 가까움은 시간적으로는 곧, 임박이고, 내용적으로는 종말론적이며, 그 형태는 환대 속에 실존한다. 여기서 환대는 나그네 제자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면도, 하느님 편에서는 나그네들을 조건 없는(비유하자면, 전대도, 신발도, 지팡이도, 인사할 여유도 없는 인생을 무조건 반가이 맞이하는) 수용이다. 인간 편에서의 환대는 하느님 편에서의 환대의 모상이다. 설교자는 역사적 예수의 육성이라고 여겨지는 본문 10절,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볼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를 소개하며 환대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최후 승리를 주목하자고 권면했다. 최일도 목사가 밥퍼 사역을 시작하게 된 사건을 소개하며 설교자는 라면 한 그릇을 사면 환대 상황이 조성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환대는 하느님 나라의 작동 스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