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하나됨을 기도했을까? (요 17:20-26)
오늘 설교자는 요한복음 17:20-26을 "따로 또 같이, 진정한 하나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자는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의 용어 두 가지를 소개했다: 재어휘화(relexicalization)와 과어휘화(overlexicalization).
재어휘화는 주류에서 쫓겨나거나 마이너하게 된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려고 기존 어휘를 의미 변형을 하여 자기들의 의사소통 코드로 만드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영광, 보냄을 받음, 하나됨 같은 단어가 재어휘화의 예이다. 과어휘화는 하나의 목적 혹은 대상을 다양한 어휘를 동원해 표현하는 것이다. 본문이 속한 요한복음 17장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과 예수의 서클에) 하나됨"인데, 예수의 기도 속에 다양하게 표현된다.
재어휘화는 주류에서 쫓겨나거나 마이너하게 된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려고 기존 어휘를 의미 변형을 하여 자기들의 의사소통 코드로 만드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영광, 보냄을 받음, 하나됨 같은 단어가 재어휘화의 예이다. 과어휘화는 하나의 목적 혹은 대상을 다양한 어휘를 동원해 표현하는 것이다. 본문이 속한 요한복음 17장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과 예수의 서클에) 하나됨"인데, 예수의 기도 속에 다양하게 표현된다.
본문의 주제인 "하나됨"이 재어휘화와 과어휘화를 해야만 유지되는 요한 공동체뿐만 아니라 사실상 상식인데, 현실은 어떤가? 본문의 구절들은 보편 교회를 옹호하는 구절, 그러니까 주류 공동체를 떠받치는 데 이용되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됨의 이유는 획일화를 반대한다. 왜 예수는 하나됨을 기도해야만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