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 인간사를 뒤덮는 하나님의 품어주심
11장 인간사를 뒤덮는 하나님의 품어주심
1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9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다. …
온 땅에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던 시절(1절), 인간은 한데 뭉쳐 하늘에 닿으려 했다.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신 하나님은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6절)라고 생각한다. 이 모습은 선악과를 범한 후 '눈이 밝아진'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반응(창 3:22)과 맥을 같이 한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율성이 당신께 위협이 되어 그것을 제지하려 하신 것인가? 어찌하여 에덴에서 그들을 내보내시고, 바벨에서 또다시 그 후예들을 의사소통을 단절시켜 흩으시는가?
창세기 편집자가 바벨탑 이야기 직후 셈의 족보(10절 이하)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시선을 옮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흩으심 뒤에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창 12:1)은, 마치 에덴에서의 추방 이후 다시 부르시어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소망의 서곡과 같다.
창세기 11장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구원 경륜의 중첩'을 본다. 바벨에서의 흩으심과 아브라함의 부르심, 이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첫 번째 레이어이다. 분열과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실마리를 놓지 않는다. 에덴동산에서의 추방과 화염검, 그리고 인간의 죄로 인해 닫혔던 생명의 길(창 3:24)이, 언젠가는 그 화염검이 거두어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이 활짝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두 번째 레이어이다. 흙(아담)으로 지음 받은 인간 본질의 고통과 허무,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자녀됨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요 17장)의 은혜는 구원의 세 번째 레이어이다.
인간사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는 인간의 정의뿐 아니라 당신의 공의마저도 넉넉히 품어 안으시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 곧 따뜻한 '품어주심' 안에 다층적으로 녹아 있다. 바벨의 흩으심조차도 결국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모든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행 2장) 위대한 구원 역사의 한 과정이었다. 하나님의 품어주심은 좌절된 인간의 역사 위에 더욱 크고 놀라운 구원의 탑을 세우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