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으로써 구조적 가난과 슬픔을 이겨내자 (눅 6:17-26)

오늘 설교자는 누가복음 6:17-26을 "빈곤과 돌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본문과 마태복음 5-7장의 내용이 비슷한데 예수의 선포 위치가 다르다. 마태복음의 해당 본문은 산 위에서, 누가복음의 본문은 산 아래이다. 각 복음서의 편집자가 수신자/대상/독자에 따라 그렇게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설교자는 누가복음 본문의 특징을 역설, 계급, 그리고 차별로 보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난과 부함, 복과 저주를 대비하여 드러내는 차별적 관점이다. 어디에서 차별이 두드러지는가? 본문은 가난을 주목한다. 본문의 가난은 상대적이지 않고 구조적이며 절대적 가난이다. 거기서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슬픔은 구조적일 수밖에 없고 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교회는 구조적 가난과 거기서 파생하는 한을 무엇으로써 극복해야 하는가? 설교자는 교회의 특징을 교회 출생의 근거로부터 찾았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태동되었다. 성령의 애칭이 파라클레토스/변호자/돌봄이 아니던가. 교회는 돌봄으로써 구조적 가난을 부숴야 한다. 교회는 돌봄의 네트워크를 구현함으로써 교회의 목표인 "안식"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서 끝내지 않고 설교자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제시했다.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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