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통해 영원하게 인식되는 인생 (마 3:11-17)



오늘 설교자는 마태복음 3:11-17을 "제목이 있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어떤 작품에 적절한 제목이 붙으면 감동과 이해는 배가된다. 설교자는 청중의 인생에 붙은 제목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설교자는 예수가 세례를 받는 본문을 통해 두 가지 물음을 던졌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예수는 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했을까? 이것은 세례 요한의 자기 인식과 예수의 자기 인식을 드러낸다. 우리네 일반 이해는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역전된다. 게다가 마태 편집자는 왕의 즉위식 양식 속에 세례 장면을 넣음으로써 예수의 세례에 대한 자신의 해석, 곧 제목을 붙였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교회력에 따른 주현절의 의미를 슬쩍 언급했다. 
예수는 이 역전에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내게 세례를 줌으로써 모든 의를 이룹시다.' 예수가 말한 "의"는 무엇인가? 마태 편집자는 세례 사건을 하나님의 자기비하, 인간되심으로 해석했다. 인간적 선이해가 역전됐다. 우리가 아는 해석학적 순환에 지진이 발생했다. 이것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통해 인식되는 순환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의 해석학을 따르겠다는 의식이요 다짐이다. 하나님에 의해 인식되며 살겠다는 각오다. 그렇다, 세례를 받으며 세례명을 주는 것은 아주 멋진 신앙 전통이다. 하나님에 의해 인식되는 기간이 영원해서 영세명이다. 설교자는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이렇게 해석하며 설교를 마쳤다: "내 인생에 제목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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