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마란 아타 + 마라나 타
오늘 설교자는 이사야 1:1-3을 '그 사랑이 도착한 곳'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자는 대림절 시작하는 날이자 주일을 맞아 기독교의 '기다림'이 무슨 의미인지를 초기 기독교의 용어로써 간단하게 정리했다. 설교자는 기다림에 대한 두 용어를 소개했다. '마란 아타'와 '마라나 타'다. 마란 아타는 오셨음(과거)을, 마라나 타는 오실 것(미래)를 의미한다. 대림절에는 마라나 타가 더 적합할 것 같은데, 설교자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이 현재라고 하며, 두 용어의 손을 다 들어줬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 그 현재의 기다림이 대림절이 의미 있게 되는 지점이라는 거다.
본문의 '구유'는 비천함을 가리킨다. 소와 나귀도 아는 제 여물통의 주인을 사람은 모른다는 것, 이것이 비천함이다. 설교자는 구유를 회중에게 개인화를 시도하여 각자 자기 속의 부끄러움, 허물, 죄라고 했다. 우리는 반드시 구유 하나씩 품고 산다는 거다. 바로 거기에 예수가 오실 것이라며 희망의 메시지로 설교를 마쳤다.
그렇다, 낮고 천함을 다른 것과 비교해서 나의 덜떨어짐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런 비천함들 중의 비천함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사실, 특히 대림절을 시작하며 예수를 기다리자고 하면서 실제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모순이지 않을까. 이레네우스가 제대로 본 것 같다. 용어야 어떻든, 그리고 그 용어의 번역이야 어떻든 간에 예수를 통한 회복, 예수를 통한 재현, 예수를 통한 재생, 한 치의 오차 없이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인간성을 덮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