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예수의 자기 비움은 단 한 번만이 아니다 (요 6:35-51)

오늘 설교자는 요한복음 6:35-51을 '나는 생명의 빵이다'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자는 설교를 위해 일명 준비찬송부터 밑자락을 깔았다. 지구가 분속 2,000km로 공전하지만 너무 빨라 우리가 못 느끼듯 쌀 한 톨에도 농부뿐 아니라 햇살, 아니 전 우주가 담겨 있지만 그 무게를 못 느낀다. 설교자는 홍순관 선생의 쌀 한 톨 무게 찬양을 몇 번이나 불렀다.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겨 있듯이 생명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의 연결성, 전체성이 생명이다. 가만 들여다보면 생명은 자기 내어줌을 통해 유지된다. 예수는 생명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왜 예수는 생명을 주고 싶어 하는가? 이제부터 나의 상상을 더해보자면, 우리는 예수(신앙)를 운운하면서도 ~하면, ~한다는 걸 자꾸만 세운다.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행위 빼줬으니 그것으로 자족하고 믿음을 남긴 걸 툴툴대지 말란 거다. 예수의 자기 비움엔 이런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예수의 자기 비움 법칙을 깨달은 바울도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그러니까 믿고 말고 할 필요도 없이 예수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했다고 썼다. 예수에게는 우리가 세운 신앙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꾸만 바리케이트를 세우니까 예수는 그걸 부수고 혹은 그 장벽을 넘겨 빵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담을 쌓는 횟수만큼 예수는 생명을 주셔야만 한다. 

다 좋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가 주고 싶어 하는 생명의 빵이 단지 정신적, 영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그래서 배가 더부룩해지는 빵도 담겨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생명을 이룬다 할지라도, 배고픈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세 끼 굶으면 군자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 오늘의 인상적인 말: 원자 수준에서는 사람, 사물이 구분 안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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