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5장: 악한 분노
에스더 5장
악한 분노
9 그 날 하만은 마음이 흐뭇하여, 아주 즐거운 기분으로 대궐을 나섰다. 대궐 문을 지나는데, 거기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모르드개는 일어나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서, 하만은 그만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지만,
10 꾹 참고 집으로 돌아갔다....
◇ 민족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한 에스더는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왕과 모든 일을 꾸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하여 흡족케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만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재산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1만 달란트를 내놓을 정도), 아내와 아들은 10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후는 왕을 위한 특별잔치에 자신만을 초대해 주었습니다. 하만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날 듯한 그의 마음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르드개였습니다. 왕도 왕후도 자신을 귀히 여기고 높여주고 백성은 자신 앞에 엎드리는데, 보잘것없는 모르드개만 예외였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을 봐도 엎드려 인사하기는커녕 일어나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왕과 왕후의 인정을 받고 백성들의 우러름을 받아서 기뻤지만 모르드개로 인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친구들이 분노를 없앨 묘안을 냈습니다. 그 묘안은 모르드개를 사람들 앞에서 처참하게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맞습니다. 하만에게는 그의 분노를 삭히고 선한 길로 인도할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아니면 분노가 그의 눈과 귀를 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종류의 분노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연스러운 분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분노입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일에 대한 분노입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 선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분노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악한 분노”입니다. 자신과 이웃을 해치는 분노입니다. 이 분노는 결국 자신을 해칩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분입니다(요4:2). 성경은 우리에게도 노하기를 더디하라(약1:19)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어떤 분노를 하고 있을까요? 어떤 분노를 해야 할까요? 야고보는 왜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하였을까요?
♧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하는 이유는 돌아설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 아닌가요?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닌가요? 노하기를 더디하게 하소서. 또한 거룩한 분노와 악한 분노를 구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분노에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