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호산나 기도 -마태복음 편집자가 예루살렘에서 확인한 약자들의 무기
마태복음 21장: 호산나 기도 -마태복음 편집자가 예루살렘에서 확인한 약자들의 무기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4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22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1장이 종교와 정치의 본산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사역이어서 그런지 마태복음 편집자는 대결 구도를 그린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백성의 장로, 바리새파, 성전 장삿꾼, 포도원 농부가 하나의 그룹이다. 마태복음 편집자는 이 그룹을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비유했다. 이 그룹은 권한을 쥐고 있다. 다른 하나의 그룹은 어린아이, 세리와 창녀, 병자, 세례 요한, 예수가 속한다. 그들은 권한을 휘두르는 자들의 밥이다.
기득권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권한을 중요시한다(23절). 그들에게 권한은 체제를 유지하는 관례이고, 때로는 그들의 허물을 가려주는 면벌부다. 제정일치(정교일치)의 사회에서 신은 권한 수여자이고 권한을 받은 이들이 신의 대행자가 된다. 신의 대행자의 권한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권력이 되는 거다.
이런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권한 수여자가 커튼 뒤에만 있어서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고사하고 그의 목소리도 들려서는 안 된다. 그는 오직 대행자들과만 소통해야 한다. 그야말로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구도가 법제화되는 거다. 이 법은 절대 공격 받을 수 없다. 대행자들이 권한 수여자를 높일수록 자신들의 위상도 강화된다. 그들만이 범접할 수 없는 권한 수여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인지하만인지상 구조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적용되어 지배 논리가 된다. 정교일치는 그 체계의 텃밭이다.
예수는 대행자들의 대척점에 어린아이와 젖먹이, 세리와 창녀, 그리고 세례 요한을 내세웠다. 그들은 약해 보인다. 어린아이는 아직 인구수에 들지 못하기에 사람이 아니고, 세리와 창녀는 개돼지였으며, 세례 요한은 말 한마디 꺼냈다가 참수 당했다. 그들은 권한을 받은 자들의 밥이다. 그런데, 예수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에 대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어린아이, 세리와 창녀, 세례 요한의 외마디가 통할 것이라 장담한다. 마태복음 편집자는 입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말랐을 때 예수의 자신감을 한껏 드러낸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21절). 그들의 시위는 과격할 수 없다. 힘도 없고 조직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투쟁 수단은 호산나(도와주세요!) 기도다. 맛을 잃은 성전은 청소되어야 한다(12절). 성전은 오직 호산나의 기도자들의 집이어야 한다(13절). 예수는 보란듯이 장삿꾼들에 가려 성전 뜰에서 외면당한 눈 먼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고쳐주신다(14절). 예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당시 사회구조에서 어린아이와 세리와 창녀의 호산나 기도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당장’ 말라버리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20절).
마태복음 편집자의 시선을 따라서 21장을 읽으면, 예수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이 아직 열매 철이 아닌 애꿎은 무화과나무를 죽인 생뚱맞은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분의 성전 청소가 과격해 보이지 않는다. 그분이 규정하는 성전 개념이 낯설지 않다. 겉만 화려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그분이 ‘하나님이 주신 호산나 기도로써 너희도 할 수 있다’ 라고 하시는 말씀에 용기 내어 계란 하나를 쥐게 된다. 삼일 후에 다시 용기를 내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