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예수가 언급한 죽음은? - 마태복음 편집자의 죽음 이해

16장: 예수가 언급한 죽음은? - 마태복음 편집자의 죽음 이해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2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28절에서 예수가 말씀한 ‘죽음’은 어떤 죽음을 뜻할까? 생물학적 죽음인가, 영혼의 죽음인가, 아니면 둘 다를 포함한 죽음인가?

일반적으로 28절은 죽지 않고 예수의 재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서 그분의 재림과 관련시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은 사실상 28절을 난해구절로 만들었다. 당시 예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다시 오심(파루시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재해석되어야 한다. 예수가 말씀한 의미를 다시 파악하려면 예수가 말한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죽음을 생물학적 의미로 해석하면, 28절은 예수의 파루시아 지연이라는 덫을 피하지 못한다. 해당 구절의 단락 속의 의미 그리고 17장의 변화산 사건과의 연속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예수가 말한 죽음이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예수가 언급한 죽음의 의미는 단락(21-28절)의 다른 구절들이 보여준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혹은 세 가지를 예고했다. 그것은 고난, 죽음,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21절). 베드로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하자(22절) 예수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며 그를 꾸짖는다(23절). 여기서 예수가 지적한 사람의 일은 고난과 죽음의 거부, 다시 말해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24절)이고,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시도다(25절). 반면 하나님의 일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 부활(21절), 그리고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이다(25절). 그런데, 사람의 일을 선택하면 온 세상을 얻는다(26절). 

여기서 예수는 정곡을 짚는다.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느냐? 그리고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26절) 예수는 육신의 죽음을 피하려고 동시에 온 세상을 얻으려고 사람의 일(고난과 죽음의 거부)을 선택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예수가 생각하는 목숨은 생물학적 차원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도 죽일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보듯 영혼을 포함한 온몸의 죽음이다. 영혼의 죽음을 되찾을 수 있는 대가는 사람에게 없다. 다시 오실 예수가 보상을 약속할 때 그 기준은 ‘행실’이다(27절).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 일의 선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는 임박한 재림의 때까지 살아 있을 사람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 28절을 시간의 제약성을 걷어내고 해석하자. 28절을 고난 받고 마침내 죽임을 당하며 자기를 부인하며 살았기 때문에 인자가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음으로 해석하자. 

이런 해석에서 볼 때, 표준새번역/새번역의 쉼표의 위치는 절묘하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번역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뒤에 쉼표를 넣지 않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다음에 쉼표를 넣음으로써 28절을 예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 가운데 일부가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분의 다시 오심을 볼 수 있다로 해석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오히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를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여 (영혼의)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라는 의미로 해석하며 예수가 말씀하는 죽음의 의미를 또렷이 드러냈다.

다음으로, 28절은 17장의 변화산 사건과 연속성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해석에서 중요한 전제는 해당 단락(16:21-28)에서 예수의 말씀을 듣는 대상이 제자들이란 점이다. 변화산에서 예수가 이미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것을 제자들 중 일부가 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죽기 전에 예수가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 회담하는 것-재림은 아니지만-을 보았다. 이것은 예수가 말한 죽음의 의미를 육신적 죽음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면서 재림 지연의 이슈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언급한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과 영혼의 죽음 모두를 포함한다고 넓고 안전하게 해석될 수 있다. 우리로서는 육신의 죽음을 대신하는 것도 아득한데 영혼의 죽음의 대속은 말해 무엇하리오. 어쨌든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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