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6: 하나님 의지 하기
시편 146: 하나님 의지 하기
5절: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성서는 두 개의 기둥(주제)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체험과 고백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이다. 성서 각 권은 하나님은 온 피조물을 사랑하신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다른 하나는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과 어떻게 부대끼며 살 것인가다. 후자를 그리스도교적 삶과 윤리라고 한다면, 전자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으로서 교리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제를 한마디로 가장 잘 요약한 구절로 요한복음 3:16을 추천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하나의 방향을 지니면서 두 가지 주제를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신다가 교리적인 면이라면,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의지)하자가 윤리적인 면이다. 사도 바울이 교리와 윤리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설명하는 데 강점이 있다면, 요한복음은 그림을 제시하며 뉘앙스를 느끼게 하는 면에 능하다(특히 요한복음 17장은 최고의 그림이다). 구약에도 요한복음 같은 곳이 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대목이다. 그 가운데 압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이다. 이 장면과 요한복음 17장의 예수의 유언 기도는 찰떡 같이 포개진다.
시편 146편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자고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시인은 역사의 긴 시간을 이어오며 독자들에게 ‘너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가’를 묻는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는 구호로 남기 십상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결정하고 살아보면, 그것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설교들이 사실상 ‘하나님 신뢰와 의지’라는 주제로 수렴하지만, 한 시대나 몇 번만의 설교로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수 없다. 이러한 최후 고백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바로 거기에서 성서의 큰 흐름과 방향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