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 주님 신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입니다.

시편 130: 주님 신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입니다.

5절: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며 내가 주님의 말씀만을 바란다.

시인은 주님의 약속과 그분의 정체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의 약속을 신뢰한다. 시인의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인자한 분이다. 시인이 주님만 신뢰도록 만드는 이유와 힘은 무엇일까? 주님과의 관계에서 ‘신뢰-낙심-회복’ 사이클이 시인에게 익숙해진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시인에게 주님만 남았는가? 전자는 인간 심성의 가벼움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사람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기애에 따른 배신이 본성적이다. 후자가 더 설득력 있다. 후자는 신약성서의 과부와 재판관 비유를 가리킨다. 과부는 불의할지라도 재판관을 찾아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시편 130편 시인에게도 주님 외에 다른 대상은 없다. 비록 시인이 처한 상황이 주님만 신뢰할 수 없게 만들지라도 그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시인에게 주님 신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이며 운명이다. 이스라엘은 야훼와 그밖의 다른 신들 사이에서 선택했다.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을 통해 우상 숭배를 지적당해야 했고, 그것 때문에 그들의 나라는 망했다. 이것이 성서 기록자들(편집자)의 일관된 관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없이 쏟아지는 예언들 속에서 선택이 아닌 숙명의 희망을 듣는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계약의 갱신을 선포했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 31:31-33)

이 예언은 시편의 시인이 주님만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정확히 겹친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님은 이스라엘의 마음에 새겨지는 계약을 약속했다. 이것은 필연이고 운명이다. 이제 더는 이스라엘이 야훼냐 다른 민족의 신들이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선택 당했다. 이 사실이 이스라엘의 선택과 의지를 뛰어넘는 운명이다.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주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제나 인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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