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8: 수고와 보상 체계의 올바른 실행
시편 128: 수고와 보상 체계의 올바른 실행
2절: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상식적으로 내가 일한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이 복 아닌가? 그런데 시인은 수고한 만큼의 복을 말한다. 이 말은 과욕을 경계하는 것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수고와 보상 체계가 왜곡되어 있음을 뜻할 것이다. 율법, 곧 사회의 규범 체계가 올바르게 작동된다면(희년 등), 적어도 이스라엘 사회에 경제적으로 극빈층은 없어야 하며, 신분적으로 자발적이지 않은 영원한 노비는 실존할 수 없다. 다윗 때나 예수 때 그리고 오늘날도 수고에 따른 정당한 보상 체계가 부드럽게 작동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시인이 수고와 보상의 1:1 체계를 주님의 복과 은혜로 규정했겠는가!
수고와 보상이 왜곡된 세계에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은 그 체계의 올바른 작동을 내세로 투사했다. 이 땅에서 눈물이 흐른다면 저 세계에는 웃음꽃이 핀다. 이 땅에서는 독사 굴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지 못하지만 저 세계에서는 그것이 일상이다. 차안과 피안이 역설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차안이 피안의 세계로 투사하는 모습을 피안이 차안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거꾸로 표현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투사하든 저 세상을 이 세상으로 이끌어 들이든 그것이 인간 실존의 정신 현상이라면 설계도의 정면도냐 측면도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차안의 인간의 투사와 상관 없는 피안의 움직임이 상정된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기도에 제한받지 않는 피안의 존재와 행동이다. 그것이 기적과 계시일 것이다. 그러나 차안의 경계를 벗어난 피안이란 것은 인간 정신의 이론적 한계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