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마태복음 편집자가 비교하는 세례 요한의 초대장과 예수의 초대장
11장: 마태복음 편집자가 비교하는 세례 요한의 초대장과 예수의 초대장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10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극찬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한 말씀을 더하셨다.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11절). 정양모 신부는 이 부분을 마태복음 편집자의 견해로 해석한다. 편집자는 모두가 존경하는 세례 요한을 추켜 세우며 예수를 더욱 크게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하늘 나라에서 작은 이’를 예수의 제자로 보는 견해보다 예수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편집자의 목적에 더욱 적합하다. 땅의 계급인 큰 자와 작은 자라는 구별은 하늘 나라에 가당치 않기 때문이다.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 한 분 아래 모든 피조물은 동등하게 공생한다. 그래서 하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 아니겠는가. 모든 예언자와 그들의 끝에 세례 요한이 가장 예수와 가깝게 서 있다 하더라도 예수를 넘어설 수는 없다. 이것은 편집자가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이다.
편집자는 예수의 하늘 나라 초대장을 소개한다. 신약학자들의 해설에 따르면, 기존 약 600가지의 계율과 그것들을 황금률과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간추린 예수의 정리가 대비된다. 그래서 예수의 초대장을 받은 이의 멍에와 짐은 복잡하지 않고 편하고 가볍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초대장을 받을 최소한의 조건으로 회개의 세례를 제시했다. 그렇게 그는 예수의 오실 길을 예비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질문하자. 과연 예수는 우리에게 멍에를 씌우는가? 예수의 초대장에는 조건이 적혀 있지 않다. 초대장을 받는 편에서 충족할 조건은 없다. 초대장을 보내는 이의 원결정만 남을 뿐이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하나님의 원결정을 콕집어 말할 수는 없어, 아니 그 이상의 개념을 찾을 수 없어 두리뭉술하게 사랑이라 보았다. 편집자의 의도를 따른다면, 예수의 초대장이 세례 요한의 초대장보다 더욱 감격스러워야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