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장: 껍데기는 가라!
5-6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 9장을 읽고 묵상하며, 어느 시인의 시 제목이 떠오릅니다. “껍데기는 가라” 어렴풋한 기억에 7,80년대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시로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 즉 순수함을 갈망하는 시로 기억됩니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면 어떨까요? 쓸모 없고, 무의미할 뿐이겠지요.
에스라는 100여년 만에 부푼 꿈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 이르러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는 제사를 드릴 때 옷을 찢으며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 하였습니다.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폐허가 되었던 성전을 모두가 힘을 합하여 수십 년에 걸쳐 끝내 완성하였습니다. 그 성전에서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리라 생각하며 꿈에 부풀어 돌아왔는데, 거기에서 에스라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의 이방인들이 하는 가증한 일, 즉 구역질나는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증한 일, 구역질나는 일”로 번역된 토에바는 성경에서 동성애(레18:22)를 비롯해서 전통적으로 금지된 성 관계들(레18:26-30) 혹은 우상 숭배(신7:25-26; 12:31 등)를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백성들이 모두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성전을 지어 놓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이 있고 거기에서 율법에 따른 제사를 드린다 해도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있지 않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성전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율법의 규정들도 껍데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성전을 허물어 폐허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에스라가 예루사렘으로 돌아온 이유는 율법을 가르쳐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그 뜻을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순수한 알맹이를 지켜내기 위함입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가라!
하나님, 우리는 종종 껍데기에 눈과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껍데기가 아닌 순수한 알맹이를 향하게 하시고, 알맹이를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