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장: 인간 가능성이 아니라 예수의 가능성이 옳지 않겠나?
8장: 인간 가능성이 아니라 예수의 가능성이 옳지 않겠나?
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예수님은 무슨 의미를 담아 자신의 십자가 죽음 훨씬 전에 십자가를 언급하셨을까? 예수님과 마가복음 편집자 및 독자 사이의 십자가 개념은 서로 다르다. 예수님의 골고다 사건으로 말미암아 마가복음 편집자와 그의 독자들의 십자가는 예수님과는 다른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언급한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보다 자기 절제와 부인의 의미라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하기에 예수님이 34-35절을 말씀하셨다면 칸트가 맞다. 정언 명령은 인간의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도덕 준칙을 몇 가지만이 아니라 무한히 생성할 수 있고, 생성된 준칙들 만큼 의무를 자동 도출한다.
인간 가능성의 세상에 구원은 없다. 구원은 인간 가능성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구원은 오히려 부실한 인간 가능성을 품는 대속이다. 그리스도인 누구나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던져야 한다는 준칙과 의무 명령을 예수님이 스스로 거부한다. 34-35절을 무엇을 얻고 실현하기 위한 요구 행위로 해석하지 말자. 노력과 결단과 역설을 내포한 의무가 인간에게 지워지는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라진다. 차라리 그 구절을 예수의 다짐과 선언으로 해석하자.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겠다.’ ‘내가 목숨을 던져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 이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전적으로 예수께만 가능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기대는 해석이다. 십자가는 예수님만 가능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