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9: 에단의 기도와 야훼 응답의 일치

시편 89: 에단의 기도와 야훼 응답의 일치

33-34절: 그러나 사랑만은 거두지 않으리라. 성실만은 지키리라. 맺은 계약, 틀림없이 지키고, 내 입으로 말한 것, 변경하지 않으리라.

시편 89편은 에스라 사람 에단(Ethan)의 기도이다. 곤경에 처한 에단(이스라엘)은 야훼와 이스라엘의 첫 사랑, 곧 다윗에게 맹세한 그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냐고 묻는다: “주여! 지난날의 그 첫 사랑의 표시들, 어디에 있사옵니까?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굳은 약속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33절 이하에서 야훼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내가 사랑을 거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맺은 계약 성실하게 지키리라.’

이 대답이 야훼의 대답이 아니라 에단의 기대라면, 그것은 무의미한 희망일 뿐이다. 사실상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다. 곤경에 처한 불안한 인간의 종교 심리로 말미암아 보호와 안전을 기대하는 프로젝션의 결과가 그리스도교라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금붙이를 던져 황소를 만들어 그것을 신이라고 숭배한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스스로 신을 만들어 그것에 무릎을 꿇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3절 이하는 에단의 머리속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무한히 원운동을 하고 만다.

무엇보다 에단의 기대와 야훼의 응답이 일치해야 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야훼가 에단의 기대를 뚫고 들어와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이요, 그리스도교가 종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야훼가 자존하셔야 한다. 야훼가 에단을 돌파하셔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에단이 마련한 야훼의 독자성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에단의 머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일지라도, 그리스도교는 에단의 기도(프로젝션)가 아니라 그를 돌파하시는 하나님의 구도를 잃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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