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3 : 주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
3절: 그들은 주님의 백성을 치려고 음모를 꾸미고, 주님께서 아끼시는 이들을 치려고 모의하며
이스라엘에 맞서 나라들이 연합했다. 한 나라를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이스라엘은 연합군을 상대해야 한다. 상황은 긴박하게 진행 됐고, 시인은 이스라엘의 위기 탈출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사실 이스라엘이라 하여 그들을 맞서 일어난 동맹군보다 선하지 않다. 이스라엘도 연합국 못지 않게 죄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침묵하지 말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스라엘과 이웃 나라의 싸움이지만, 그 전쟁은 이스라엘 신과 이웃 나라의 신들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조용히 있지 말라고 요청한다. 다른 하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다. 이스라엘이 조롱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독 당한 것과 같다. 성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으로 인식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한 몸이다. 이스라엘의 행복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이스라엘의 상처는 하나님의 아픔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 품을 자주 뛰쳐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시인의 기도할 수 있는 힘이자 근거이다.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인식은 하나님의 자녀 사상으로 이어졌다. 자녀의 성실과 불성실, 옮음과 그름이 자녀됨을 손상시킬 수 없다. 이것을 인간의 차원으로 빗대어 이해하면, 유전적으로 부모와 자녀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끊어낼 유전자 조작은 없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의 굳건함을 이렇게 이해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로 그 관계에서 시편 83편의 시인, 사도 바울, 그리고 이 시편을 읽는 우리는 그 길고 넓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