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영-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삼중 양태로

*미하엘 벨커, <오늘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다각적 성서적 탐구>, (서울: 동연, 2015). 15-38.

미하엘 벨커는 이 제목으로 2012년 봄 한국에 왔을 때 강연했다. 강연의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이 종말론적 전망에서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양태로 수미일관하게 펼쳐졌다는 거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목소리가 하나님 나라의 선포인데, 이후 그분 사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내용이 전개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마무리에서 나타난 내용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는 거다.

벨커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사역에 대한 해석은 명료하다. 이것은 그의 성서해석 관점이며 특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은 왕적 직분, 제사장적 직분, 예언자적 직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시간상으로 구분하면 십자가를 중심으로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시간을 들여다 보면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벨커는 이 세 가지 사역이 구약의 내용도 포괄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은 주권 행사나 통치를 가리킨다. 예수는 그의 자유로운 주권을 인간을 위해 자기를 제어하고 제한하는 데(Selbstzuruecknahme) 사용하여 섬기고 있다.

둘째,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분에서 벨커는 히브리서와 칼 바르트의 견해를 따라 <심판주가 심판 당하셨기에> 그가 영원한 대제사장이다는 점을 주목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구약의 (참된) 예언자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전개한 논지를 마무리 하며 벨커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어느 한 직분을 강조한다고 제대로 해석될 수 없고, 세 사역의 상호 내재적인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내겐 상호 내재적 측면이란 게 그럴듯해보이면서도 확 다가오지 않는다. 

벨커는 다니엘 미글리오리의 삼직분론에 대한 정리 및 제안을 수용하며 칼 바르트의 해석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바르트는 정말 대단한 바위다). 논문 마지막 부분인 세 직분/사역의 상호 침투/내재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벨커가 그리스도 사역의 삼위일체적 양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삼각형의 각 뿔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면, 드러나는 게 성부일 때 나머지 뿔들은 숨어 있는 그런 모습을 얘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모습인지는 정확히 그림이 안 그려진다.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개념이 참 애매하긴 하다. 이 개념이 벨커가 영-그리스도론이란 제목을 붙이게 한 이유일지 모를 일이다. 물론 벨커는 논문 서두에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케 하는 영으로 말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에서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양태로 연결하여 본 벨커의 관점은 멋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분 나라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위해 자기를 제한하고 섬기며, 우리와 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자기를 포기하고, 당신의 생명을 선사하는 영의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겸손(?)이 해와 같이 빛나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논문 읽고도 설교처럼 적용 가능하다. 교회/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섬기는 왕으로서의 길, 자기 자신의 목숨을 제단 숯불 위에 불태워 바치는 제사장의 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참된 예언자의 길을 뒤따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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