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7: 차가운 기억과 뜨거운 기억
3절: 주님은 만백성을 우리에게 복종케 하시고, 뭇 나라를 우리 발 아래 무릎 꿇게 하신다.
이스라엘이 주변 열강들에게 맹위를 떨친 경험을 ‘뜨거운 기억’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그 반대도 있다. 외세로부터 위협을 당한 이스라엘의 기억으로서 ‘차가운 기억’이다. 시편 47편의 고라 자손은 어떤 기억을 소환하였을까?
‘뜨거운 기억’은 찬양으로 이어지고, ‘차가운 기억’은 기도로 변한다. 전자의 문제는 뜨거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데 있다. 찬양의 공간은 매우 넓다. 그 공간은 하늘, 땅, 바다, 해, 달, 별, 사람을 포괄한다. 그만큼 찬양하는 이의 가슴이 뜨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뜨거운 기억도 문제를 내포한다. 뜨거움이 식으면 기억은 미래로 발을 내딛지 못하고 과거로 향한다. 차가워진 가슴은 뜨거웠던 기억을 소환하는데, 그 소환 형식이 기도다. 뜨거운 기억은 기도로써 전진한다.
찬양하는 자와 기도자는 뜨거움과 차가움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찬양과 기도를 마주 붙였다. 찬양과 기도를 각각의 면으로 하는 동전을 치즈처럼 길게 늘리면 시간이 형성된다. 기도자는 찬양의 뜨거움을 꺼내 차가운 현재 너머로 던진다. 조정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뒤를 보고 앉아서 앞을 향해 노를 젓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묻는다.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뜨거운 기억을 더 많이 갖고 있을까, 차가운 기억을 더 많이 가질까? 사실상 이스라엘의 가슴은 차갑다. 그러므로 시편 47편의 고라 자손의 찬양은 대단히 선제적이고 도전적이다. 그것은 구원을 바라는 기도를 하면서 구원에 대하여 미리 감사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선제적 찬양의 근거는 고라 자손을 감싸고 있는 열악한 상황이라기보다 하나님에 대한 단순하고 순전한 신앙일 것이다. 물론 그들의 두 가지 근거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신약성서의 마지막에 위치한 요한계시록, 그 책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찬양에 우리의 소망을 두자. 하나님의 가슴은 차갑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