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2-43 : 영적 갈증과 갈등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시편 42편과 43편은 사본들 대부분에서 한 편의 시다. 후렴구처럼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시편은 고라 자손의 노래이다. 시인은 성전에서 찬양을 하던 사람이었다. 시인의 상황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목이 타는 상황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실제 상황이 드러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시인이 겪는 고통은 육체적이라기보다 영혼의 갈증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었다(3)고 하는데, 이것은 타인이 아닌 시인 자신의 내면의 소리이다. 시인은 영적으로 갈등하고 있다. 교회에서 혹은 각종 모임에서 예배할 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공동체에 머물지만, 그의 영혼은 시인처럼 갈증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묵묵부답은 그분의 부재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한 번 더 결단한다: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다시 영혼의 찬송을 하게 될 줄 믿는다.’ 신약에서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영혼의 갈증을 경험했다. 시편 42편의 시인은 예수의 겟세마네에서의 갈등을 겪는 것 같다. 예수에 비하면 시인은 아직 한 단계 더 깊은 심연의 갈증을 모른다. 예수도 겟세마네에서 시인처럼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의 뜻 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예수의 목마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수는 시인이 기대하던 영혼을 담은 찬송을 부를 수 없었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로 영혼의 갈증과 갈등의 극치를 보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예수의 외침이 시인의 두 번의 결단(42:5, 11; 43:5)과 비교될 수 없다. 시인이 두 번 결단하며 자신의 믿음을 쌓는다 해도 예수님의 영혼의 고통에 못 미친다.

시편 42편의 시인은 아직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으나, 인간 예수는 더는 하나님을 기다릴 수 없다. 하지만 시인도 예수도 하나님의 자기 존재 증명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활로써 증명하셨다. 시간을 거슬러 시인은 그의 바람 대로 다시 찬송할 수 있었을까? 부활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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