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0: 미쁘신 하나님
11절: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니, 주님의 긍휼하심을 나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과 미쁘심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십시오.
1-10절까지의 다윗의 모습이 11절부터 확 바뀐다. 그의 감사와 찬송이 울부짖는 기도가 되었다. 10절까지의 다윗은 하나님의 돌봄과 구원에 대해 가슴이 벅차올라 주체할 수 없었다면, 11절부터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그에게 구원은 과거가 되었고, 고난이 현재가 됐다. 그의 기억이 그의 현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다윗은 필사적으로 과거의 기억, 곧 감사와 찬송을 붙잡고 있다.
우리는 시편 40편의 다윗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단편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전율하기도 하지만, 고난 때문에 낙심하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좌절과 실패에서 멀리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 곁에 가까이 계시기도 하고 멀리 계시기도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문제인가, 그리스도인의 문제인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기분에 따라 스위치처럼 존재와 비존재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느낌에 따라 가까이 계시거나 멀리 계시지 않는다. 구원하신다 싶으면 주님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무엇이라 부를 터인가?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하나님의 거주하시는 자리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피조물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다윗은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이니까 기뻐 찬송하다가 울며 구원을 간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람처럼 오르락내리락 하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하나님의 긍휼과 미쁨은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신실하다. 다윗은 11절 이후에서도 하나님을 만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