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4 : 제3의 기도자

18절: 실망한 사람 옆에 야훼 함께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주신다.

베네딕도회 소속 수도원에 피정을 갈 때마다 나는 수도회의 모토인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는 수도사를 뵙는다. 수도원에는 하나님과 만나는 방편으로 기도만이 아니라 노동도 있다. 노동은 일하는 것만이 아닌 공동생활 그 자체다. 기도와 공동의 노동 속에 하나님이 임재한다.

시편 34편의 다윗에게 기도와 찬송은 동전의 양면이다. 기도와 찬송이 서로 맞붙어 있지만, 그 둘은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다. 기도가 찬송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더 큰 실망과 낙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하게도 시편의 다윗은 기도가 곧 찬송이다. 그래서 시편이 구약성서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시편 34편을 묵상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기도와 찬송이 일치된 다윗을 만난다. 묵상하는 이는 실망과 낙심의 현실 속에서 시편을 읽는다. 그는 다윗의 상황에 자신을 일치시킨다. 제1의 기도자가 등장했다. 그렇다고 다윗과의 연합이 읽는 이의 적나라한 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더한 현실이 아직 남아 있다. reader이며 동시에 prayer인 그는 다윗에게 희망을 건다. 이제 제2의 기도자가 등장했다. 그는 다윗과 자신의 최종적 일치를 소망한다. 그것은 다윗처럼 그에게서 기도가 곧 찬송이 통합되는 기대다. 그러나 기도자는 또 한 사람의 기도자를 발견하고 놀란다. 그는 바로 다윗과 제1, 제2의 기도자를 바라보고 있는 제3의 기도자다. 사실상 그가 시편을 읽으며 다윗을 만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시편 34편을 관조한다. 이 때부터 그는 성서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그는 기도와 찬송이 손바닥 앞뒤처럼 가깝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두렵다. 그 순간이 그로 하여금 진실하게 기도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은 제3의 기도자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가. 하나님은 제1의 기도자, 제2의 기도자, 그리고 제3의 기도자와 함께 계시고 붙들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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