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 엄살을 받아주시는 하나님
5절: 죽으면 당신을 생각할 수 없고 죽음의 나라에선 당신을 기릴 자 없사옵니다.
지옥도 천국도 나의 생각과 느낌이 있을 때 의미 있다. 고통을 느껴야 하고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만 지옥도 천국도 존재한다. 물론 지옥과 천국을 현재 차원의 연장으로 바라보아야 감각적일 수 있긴 하다. 현재와 전혀 다른 차원의 지옥과 천국을 현재의 것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다 보니 천국은 현재의 좋은 것인 각종 금은보석으로 꾸며져 있어야 하고, 그 곳 물은 생명의 물이어야 하고, 집은 기본이 대저택이고, 지옥은 현재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의 집합소여야 한다.
다윗은 그렇고 그런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의 죽음을 말한다. 그런 나라에는 하나님도 없다.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의 나라, 마태복음이 말하는 죽음의 차원 아니겠는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차원이 아닌 둘 다 멸하시는 차원 말이다. 마태복음은 그런 차원의 세계를 지옥이라고 했다. 영혼도 죽었으니 하나님을 기릴 건더기도 없지 않은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앞두고 기도할 때 벌벌 떨며 기도한 것은 하나님 없는 세계 때문이었다. 거기로 가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 아니었겠나. 어쨌든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부리는 다윗의 엄살도 하나님은 많이 아프지 하며 어르고 달래며 약을 발라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