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 기도의 현실-하나님 밖에 없음
5-6절: 이 몸은 주의 사랑만을 믿사옵니다. 이 몸 건져주실 줄 믿고 기뻐합니다. 온갖 은혜 베푸셨으니 야훼께 찬미드리리이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닥침보다 기도의 불발 조짐 때 더 고통스럽다. 기도 응답의 지연은 기도자의 마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잘려나갔다는 불안감을 일으킨다. 시편 13편에서 다윗도 기도 응답지연 때문에 근심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믿는다면서 자세를 고쳐잡는다. 다윗이 하나님께 철퍼덕 엎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다윗에게 쌓인 기도 경험 때문이다. 기도 응답이 지연된 적은 많으나 결국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불발된 경우는 없었다는 익숙한 경험, 곧 하나님의 신실함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믿는다고 하며 기도를 마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다윗의 선제적 기도 방법이기도 하다. 다윗은 때때로 하나님의 은혜 이전에 선제적으로 그분의 은총 베푸심을 감사하며 찬송한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좋은 경험들로부터 하나님의 신실함을 매번 붙잡을 수 있을 것인가?
내동댕이쳐진 다윗의 처지는 하나님이냐 다른 그 무엇이냐를 선택하는 상황이 아니다. 다윗에겐 하나님 밖에 없다. 실제로 하나님이 다윗의 기도에 응답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제적으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감사 찬송을 한 것이 물거품이 된다 해도, 미우나 고우나 다윗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다. 어느 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 연구가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고 본회퍼의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듯, 하나님이 없는 현실에도 다윗에겐 하나님 밖에 없다. 다윗의 처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와 닮았다. 예수가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에 기댈 수 있겠는가? 복음서의 어느 억울한 과부는 의롭지 않은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하소연할 데가 그 사람 밖에 없었다. 다윗도, 어느 과부도, 예수도, 그리고 오늘날 그들을 바라보는 어느 그리스도인도, 그들의 하나님 밖에 없음은 기도 현실의 표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