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시대에 생령을 찾아서
현대 기술의 정점인 데이터 온톨로지(Ontology) 구축 과정은 헬라 철학의 해부학적 환원주의와 맞닿아 있다. 신학과 신앙의 진술들을 클레임(Claim)과 엔티티(Entity)로 낱낱이 해체하고 그 관계를 촘촘하게 매핑하는 작업은 구조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도출한다. 이 파이프라인에 프레임워크를 덧대면 논리정연한 설교의 뼈대나 훌륭한 칼럼이 순식간에 생성된다. 연산(Thinking)의 영역에서 AI는 이토록 강력하다.
그러나 이 정교한 시스템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종종 서늘한 공허함이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해부하면 근육과 뼈의 관계를 완벽히 매핑할 수 있지만, 정작 개구리를 뛰게 만들던 생명력은 메스가 닿는 순간 증발해 버리는 것과 같다. 텍스트가 품고 있던 영적인 본질은 해체되는 순간 파편화되어 사라지고 만다.
모든 것을 분해하려는 시스템 안에서도 결코 엣지와 노드로 엮어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양성론 같은 진술들은 헬라적 논리로는 모순이다. 데이터베이스 한가운데에 '아포리아'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역설을 수용하는 것은 단순한 예외 처리가 아니다. 그것은 기계적 이원론으로는 도저히 쪼갤 수 없는 흙과 숨이 결합된 생령(Nephesh Chayah)이자 소마(Soma)의 신비가 실재함을 선언하는 거룩한 한계선이다. 아무리 고품질로 엮여 나온 텍스트의 뼈대라 할지라도,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없다면 그것은 시편의 고백처럼 '바람에 날리는 겨'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두고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요 3:8)라고 말씀하셨다. 생명력을 부여하는 성령의 역사(루아흐)는 차가운 진술이 살아있는 메시지가 되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충분조건이다. 하지만 기술과 데이터가 철저히 인간의 의도대로 구축되고 최적화되는 것과 달리, 이 거룩한 바람은 결코 인간의 욕망이나 시스템의 조작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우리는 온톨로지를 통해 완벽한 뼈대를 세울 수는 있지만, 그 뼈대에 생기를 불어넣는 성령의 궤적을 인간의 탐욕으로 소유하거나 계산해 낼 수는 없다.
최첨단 AI 시스템이 무의미한 연산의 폭주를 멈추고 실제적인 가치를 띠기 위해 판단의 최종 결정권자인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가 절실하게 요구되듯이 신학과 신앙의 파이프라인에서도 성령의 역사라는 초월적 개입은 그토록 절실하다. 파이프라인의 끝을 기계에게 안일하게 위임해 버리면 매끄럽지만 죽어있는 정보의 나열만 남을 수도 있다. 내가 시도하는 신학 온톨로지 빌딩이 누군가의 영혼을 베는 살아있는 검이 되기 위해서는 그 구조 위에 인간의 치열한 삶의 고뇌(루프)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성령의 바람이 맹렬하게 부딪혀 융합되는 접촉은 절대적이다.
기계가 흩어진 먼지를 모아 가장 보기 좋은 형태로 진흙을 빚어내는 시대다. 그러나 그 정교한 진흙 덩어리가 흩어지는 겨가 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생령이 되려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성령의 절실한 개입을 겸손히 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