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장: 베일에 가려진 마지막 주동자

출애굽기 32장: 베일에 가려진 마지막 주동자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출애굽기 32:32)

시내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마주한 광경은 참담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써주신 십계명 돌판은 땅에 던져져 산산조각 났고, 백성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고 있었습니다. 분노한 모세는 레위 자손을 시켜 칼을 차게 했고, 그날 형제와 이웃 3,000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우상숭배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작업 후, 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기막힌 제안을 합니다. "내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우리는 흔히 이 장면을 지도자의 무한한 책임감이나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이 기도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절망, 혹은 자기 존재에 대한 서늘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은 "이 사람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출 32:1)고 기록합니다. 그들에게 신은 야훼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세'였습니다. 모세의 부재(不在)가 곧 신의 부재였습니다. 모세는 레위인의 칼로 진영 내의 우상숭배자들을 제거했지만, 이 사태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 즉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빌미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살아있는 금송아지'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지워 달라"는 모세의 탄원은 단순한 책임 회피가 아니라 베일에 가려진 마지막 주동자인 자기 자신을 처형해 달라는 탄원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존재하는 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보이는 하나님(모세)을 의지할 것이고, 결국 또다시 타락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모세-이스라엘'이라는 삼각 구도에서 걸림돌인 자신을 제거하고, '하나님-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양자 구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근원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사표를 반려하십니다.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여라."(34절) 하나님은 모세의 논리적 해결책을 거부하십니다. 구도(Structure)를 바꾼다고 해서 인간의 죄성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사라진다고 이스라엘이 갑자기 거룩해져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제안을 물리치시고, 그를 다시 그 지긋지긋한 백성들 앞으로, 죽고 싶을 만큼 무거운 사명의 자리로 밀어 넣으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문제의 깔끔한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순과 부조리, 심지어 백성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모세라는 인간까지도 끌어안고 가시는 감당(Redemption)이었습니다.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고 판을 바꾸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모순을 덮으시는 압도적인 품음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모세는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죽음 대신 고단한 삶을 다시 부여받았습니다. 걸림돌인 자신마저도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등에 지고, 그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 곧 대속(Atonement)의 그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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