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장: 윤활유와 같은 율법, 그 첫 번째 자유의 선언

출애굽기 21장: 윤활유와 같은 율법, 그 첫 번째 자유의 선언

"너희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하고, 일곱 해가 되면, 아무런 몸값을 내지 않고서도 자유의 몸이 된다." (출애굽기 21:2, 새번역)

십계명(20장)이 하나님 백성의 헌법이라면, 21장부터 이어지는 시민법은 그 헌법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적용하는 시행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장에서 하나님과 맺은 수직적 언약은 이제 21장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수평적 관계 속으로 스며듭니다.

놀랍게도 그 관계 규정의 첫 일성(First Word)은 종의 해방입니다. 수많은 법규 중 왜 하필 노예 해방이 가장 먼저 나와야 했을까요? 여기에는 율법 수여자의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방금 전까지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법이 '형제 중 종 된 자를 놓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 율법이 단순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출애굽 은혜에 대한 감격적인 응답임을 보여줍니다. 율법은 하나님 규정을 제외하면, 한마디로 '약자 보호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율법을 빡빡하고 숨 막히는 기계 장치처럼 오해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율법은 결코 사람을 질식시키지 않습니다. 율법은 맞물려 돌아가는 거친 기어들 사이에 부어지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6년의 노동 끝에 찾아오는 7년째의 자유, 이 '안식의 리듬'은 빡빡한 인생의 톱니바퀴 사이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유의 시공간(Sabbatical Space)입니다.

이 법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영원한 속박은 있을 수 없다." 안식년과 희년으로 이어지는 이 자유의 대헌장은 하나님에 대한 수직적 사랑이 이웃을 향한 수평적 해방으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십계명의 정신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지만, 그 뿌리는 가장 낮고 천한 종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끊어내는 대지로 뻗어 있습니다. 율법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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