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9장: 냉탕과 온탕 사이, 건널 수 없는 존재의 심연

출애굽기 19장: 냉탕과 온탕 사이, 건널 수 없는 존재의 심연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모세가 주님께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산에 경계선을 정하여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경고하시는 명을 내리셨으므로, 이 백성은 시내 산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19:5, 23, 새번역)

저자는 19장에서 독자들을 극단적인 냉탕과 온탕 속에 번갈아 집어넣으며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시내산에는 삼엄한 죽음의 전기가 흐릅니다. "나에게로 오라"고 하셨지만, 정작 산의 경계를 넘는 자는 짐승이라도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황량한 돌무더기 산, 자욱한 흑암과 천둥 번개, 그리고 접근 금지 명령. 이것은 피조물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창조주의 압도적인 타자성(Otherness)을 보여주는 냉탕입니다.

그런데 그 서늘한 경계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첫 일성은 너무나 뜨겁습니다. "너희는 내 보물(Segullah)이 될 것이다."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차가운 장벽 앞에서 이스라엘은 가장 뜨거운 사랑의 언약을 듣습니다. 이 모순적인 배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흔히 이 경계선을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낭만적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그보다 훨씬 더 본원적인 곳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 냉온탕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존재론적 심연(Ontological Gap)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각인시키려 합니다. 거룩(Kadosh)은 본질적으로 분리입니다. 이 경계선은 "너희는 나와 다르다"는 엄중한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저자가 이토록 무시무시한 거리감을 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보물 언약의 무게를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이 절대적인 존재가 벌레 같은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선택했다." 이 충격적인 은혜는 오직 철저한 두려움(Mysterium Tremendum)을 통과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경계선이 높을수록, 그 너머에서 뻗어 나온 언약의 손길은 더욱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이 살벌한 긴장 한가운데를 유유히 오가는 단 한 사람, 모세가 있습니다. 그는 특수 방호복을 입은 영웅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한 예외(The Exception)'입니다. 모세는 처음 창조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토브) 모습의 상징입니다. 그의 자유함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의 증명입니다. 시내산의 경계는 우리를 밀어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알게 하여 앞으로 주어질 십계명을 단순한 조언이 아닌 생사를 가르는 명령으로 받들게 하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충격 요법입니다. 산이 진동하는 그 난리통 가운데 정지된 화면처럼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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