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장: 열정, 지혜를 만나다 - 광야의 리더십
출애굽기 18장: 열정, 지혜를 만나다 - 광야의 리더십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하는 일이 그리 좋지는 않네. 이렇게 하다가는 자네도, 자네와 함께 있는 이 백성도, 모두 지쳐 버릴 걸세. 이 일은 자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야.'" (출애굽기 18:17-18, 새번역)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집트 왕실에서 공주의 양자로 지낼 때, 동족을 위해 주먹을 휘둘렀던 그의 과거는 방향은 잃었으나 뜨거웠던 열정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광야의 지도자가 된 지금, 그의 열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홀로 백성들의 송사를 처리하는 헌신으로 나타납니다(13절). 그러나 이 열정은 여전히 2% 부족한 모습입니다. 그의 어깨에는 200만 이스라엘의 무게가, 그의 곁에는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백성들의 피로가 쌓여만 갑니다.
이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등장합니다. 미디안의 제사장, 곧 이방인인 그는 언약 공동체의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눈을 통해 내부자가 보지 못하는 무질서(Chaos)를 보게 하십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거룩한 소진(Burnout)을 꿰뚫어 보며, "어찌하여 자네 혼자만 앉아 있는가?"(14절)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모세가 무의식중에 지니고 있었을지 모를 메시아 콤플렉스를 건드립니다. 하나님은 이방 장인의 지혜를 빌려(Common Grace), 광야의 오합지졸을 조직된 하나님의 군대로 변모시키십니다. 열정이 지혜를 만나는 순간, 비로소 공동체는 질서(Cosmos)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이드로의 조언에 따른 천부장과 백부장의 세움은 단순한 행정적 효율성을 넘어서는 신학적 사건입니다. 재판은 본래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신 1:17). 모세가 자신의 권한을 나눈 것은 단순한 업무 분담을 넘어선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신도 하나님과 소통하며 거룩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존엄을 확인시켜 준 위임(Impartation)이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왕 같은 제사장'직의 맹아(萌芽)이자, 사도행전에서 일곱 집사를 세워 사역을 분담했던 초대교회 원형의 그림자입니다.
아말렉 전투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받쳐주었던 아론과 훌의 협력이 육체적-영적 하중의 분담이었다면, 이드로의 조언은 이를 제도화하여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참된 리더십은 나를 따르게 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를 비워 남을 앉히며, 그 빈자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Divine Governance)가 더 넓고 깊게 흐르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와 이드로의 아름다운 동역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혼자 짐을 지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하나님의 일에 초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