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장: 심판의 지팡이 끝에 매달린 은혜의 깃발
출애굽기 17장: 심판의 지팡이 끝에 매달린 은혜의 깃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출애굽기 17:7, 새번역)
만나의 기적이 무색하게도 이스라엘은 목이 마르자 즉각 하나님을 법정에 세웁니다. 므리바(다툼)와 맛사(시험)라는 지명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의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라 할 수 없고 계약 당사자인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자 반역이었습니다.
인과응보의 논리대로라면, 이 반역의 결과는 파멸이어야 합니다. 곧이어 닥친 아말렉과의 전쟁은 그 심판의 도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예상과 논리를 완전히 뒤엎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배반하는 백성의 질문에 침묵이나 심판 대신 승리로 답하십니다. 이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으로 치러진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광야 내내 평행선을 달렸지만, 그 평행선을 가로질러 개입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역설적인 승리의 중심에 모세의 지팡이가 있습니다. 본래 이 지팡이는 나일강을 치고 재앙을 불러오던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마땅히 불평하는 백성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야 했을 그 지팡이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첫째, 지팡이는 백성 대신 반석을 쳤습니다. "내가 거기 호렙 산 반석 위에 너에 앞서 설 터이니, 너는 그 반석을 쳐라." (6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을 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서 계신 반석을 치라고 명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통찰대로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면(고전 10:4), 이는 십자가 사건의 원형입니다. 이스라엘이 받아야 할 심판의 타격을 하나님 자신이 감내하신 것입니다. 깨어진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온 것은 심판이 변하여 은혜가 된 사건입니다.
둘째, 지팡이는 심판 대신 구원의 깃발로 들려졌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는 그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립니다. 심판의 막대기가 되어야 할 지팡이가 이스라엘을 살리는 생명의 깃발, '여호와 닛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려치는 대신 당신의 손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과 배반을 깊이 이해하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양해(Divine Accommodation)'입니다. 심판의 막대기 끝에 용서와 이해, 그리고 구원이라는 깃발을 매다신 하나님의 행동은 전적인 은혜(Sola Gratia) 그 자체입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이름 붙인 것은 단순한 승리의 기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의심했을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셨다"는 뼈아픈 회개이자 감격적인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깃발은 우리의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