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장: 임마누엘의 두 초점
출애굽기 13장: 임마누엘의 두 초점
"바로가 마침내 백성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데도, 하나님은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집트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3:17, 새번역)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 (출애굽기 13:22, 새번역)
출애굽기 저자는 마치 두 개의 알을 가진 특수 안경을 쓰고 있는 듯합니다. 한쪽 알은 '이집트 탈출'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다른 쪽 알은 '바벨론 포로 귀환'이라는 당대의 현실을 비추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이중의 렌즈를 통해 두 시대를 겹쳐 보며,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울 국가의 토대 정신을 모색합니다. 그가 발견한 재건의 청사진, 그 중심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이라는 선명한 초점이 맺혀 있습니다.
이 새로운 국가의 기초에는 인간적인 섞임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2절)라는 주권의 선언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예식은 이 나라가 인간의 힘이나 외교술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소유됨 위에 세워져야 함을 웅변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제의가 아닙니다. 제국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거룩한 저항이자 결단입니다.
광야로 나선 백성들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빠르고 효율적인 해변길(Via Maris)과 거칠고 위험한 광야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광야행은 전략적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 안경'을 쓴 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세심한 교육학(Divine Pedagogy)을 읽어냅니다. 하나님은 지름길보다 백성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전쟁이라는 감당 못 할 시련 앞에서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다시 노예의 삶(이집트)으로 회귀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염려하신 비극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이해할 수 없는 우회로는 우리를 부서짐으로부터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가장 안전한 인도법입니다.
이 지루한 우회로를 견디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저자는 행진의 대열 속에 '요셉의 유골'이라는 특별한 팩터(Factor)를 추가합니다(19절). 이것은 죽은 자의 뼈가 아니라 수백 년의 침묵을 뚫고 성취된 살아있는 약속의 성물입니다. 저자는 빈손으로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는 포로민들에게 외칩니다. "우리가 메고 가야 할 것은 바벨론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조상들의 믿음과 언약의 정체성이다." 이 뼈(에쳄)는 곧 이스라엘의 본질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입니다.
마침내 이 모든 여정의 척수이자 중심 근육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등장합니다. 낮의 뜨거움을 식히고 밤의 추위를 막아주는 쉐키나(Shechinah)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관념이 아니라 살갗에 닿는 실체의 현존임을 보여줍니다. 출애굽의 광야에서 가시적 기적이었던 이 기둥들은 포로기 이후의 백성들에게는 말씀(토라)과 성전이라는 새로운 임마누엘로 치환되어 그들의 앞길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