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묵상: 작은 불씨, 두 개의 지혜, 그리고 평화가 심겨야 열리는 정의의 열매
야고보서 3장 묵상: 작은 불씨, 두 개의 지혜, 그리고 평화가 심겨야 열리는 정의의 열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5절)
야고보의 카메라는 다시 한번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가장 아픈 현실, 그 내부의 갈등을 날카롭게 비춥니다. 그는 혀를 작은 불씨에 비유합니다. 혀는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온 숲을 삼키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졌습니다. 당시 공동체 안에는 혀를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를 베는 칼로 쓰는 이들(선생, 1절)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공동체를 둘로 갈랐고, 정신적, 육신적 상처를 입은 이들을 양산했습니다. 특히 가르치는 위치에 있거나 영향력 있는 이들의 말은 더 큰 불쏘시개가 되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작은 지체가 통제되지 않을 때, 공동체 전체를 "불의의 세계"(6절)로 만들고 삶 전체를 불태울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4-15절)
문제는 단순히 말실수나 험담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혀의 문제를 그 뿌리, 즉 마음의 문제로 파고듭니다. 그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말의 근원이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이것에서 비롯된 모든 논리와 주장을 '땅의 지혜'라고 규정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땅의 지혜가 종종 '정의'와 '진리 수호'라는 거룩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시기심과 경쟁심을 감추고 공동체의 유익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리를 거슬러 속이는 위선입니다. 야고보는 단호하게 그 출처가 "악마에게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열매는 명백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16절)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7절)
땅의 지혜에 대한 통렬한 고발하고 나서 야고보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합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그 본질부터 다릅니다. 그것은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공격성이 아니라 순결함과 평화로움으로 시작됩니다. 친절하고, 온순하며, 자비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지혜를 품은 혀는 칼이 아니라 상처를 싸매는 붕대이며, 불씨가 아니라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지혜가 '편견과 위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기 위해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가 들어설 자리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평화를 심어야 정의를 거둔다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18절)
마침내 야고보는 이 모든 논의를 가장 중요하고도 혁명적인 결론으로 이끕니다. 흔히 우리는 정의를 바로 세우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고, 그 결과로 평화라는 전리품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 순서를 단호하게 뒤집습니다. 정의는 평화의 씨앗을 심을 때 비로소 맺히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순서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사회 운동과 캠페인, 심지어 교회 내의 개혁 운동에까지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목적이 아무리 옳고 정의롭다 할지라도, 그 과정이 시기와 다툼, 비방과 정죄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하늘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땅의 지혜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한 위선일 뿐이며, 그 끝에는 더 큰 혼란과 상처만이 남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 불렀지만, 그것은 그의 특수한 신학적 투쟁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서 야고보서를 다시 읽을 때, 우리는 분열된 공동체를 향한 한 목회자의 애끓는 심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교리 논쟁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갈등으로 신음하는 공동체를 격려하고 치유하여 살리려는 절박한 목회 서신입니다.
우리의 혀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정의를 외치며 분열의 불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금 더디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묵묵히 평화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