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급진성: 인식의 폐허 위에서 피는 꽃 (요 20장)

은혜의 급진성: 인식의 폐허 위에서 피는 꽃

요한복음 20장


8 그제서야 먼저 무덤에 다다른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1. 이해할 수 없음의 파티

요한복음 20장은 '이해할 수 없음', 즉 '모름'의 파티로 시작합니다. 빈 무덤, 잘 개켜진 세마포, 천사들의 증언,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과의 만남 앞에서도 제자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베드로와 사랑받는 제자는 현장을 보고도 성경의 예언을 깨닫지 못했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했으며, 도마는 동료들의 증언을 자신의 경험적 증거 없이는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죽음'이라는 인간 경험의 최종적 한계를 부수고 들어온 부활 사건이 그들의 [[인식의 한계]] 를 완전히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인간이 예측하거나 이해해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침노해 들어온 인간 인식의 틀을 완전히 파괴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행위였습니다.

2. 우리가 두려워하는 아노미, 우리가 사는 아노미

도마의 요구는 우리의 실존을 대변합니다. 우리는 내 손으로 만지고 내 눈으로 확인하여 내 이해의 통제권 아래 둘 수 있는 신앙을 원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도마의 연약함을 품어주시지만, 곧이어 신앙의 지평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믿음]] 은 복이 있다." 이 선언은 우리에게 던져지는 은혜의 세계로의 급진적인 초대장입니다.

우리는 이 초대가 두렵습니다. [[전적 은혜]] 에 우리를 맡기면, 우리의 도덕과 질서가 무너지는 '아노미(Anomie)'가 오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노미의 역설]] 과 마주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말로 진짜 아노미 상태입니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 자기 의와 공로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하나님의 법인 '은혜'가 부재하고 오직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혼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아노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노미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독된 이 세상의 아노미를 깨뜨리고 들어오는 유일한 질서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결과를 걱정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세상의 법칙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3. 내맡김의 역동성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적 은혜 안에 거해서 발생할 수 있는 행실의 아노미를 걱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전적 은혜 안에 거할 수 없다는 반증입니다. 이 깨달음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우리의 과제는 은혜와 행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과제는 두려움을 넘어 은혜의 바다로 온전히 뛰어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능동적 수동성]]'의 신비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 하는 가장 능동적인 행위가 그저 줄기에 '붙어있는 것'이듯 우리가 할 일은 결과를 염려하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께, 그리고 그분이 보내시는 성령 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입니다. 설령 그 결과가 세상의 눈에 무기력하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그 내맡김 안에서 성령 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역동적인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두려움에 문을 걸어 잠갔던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나아가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 20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여전히 너의 인식과 경험이라는 폐허 더미 위에서 신앙의 집을 지으려 하느냐, 아니면 그 폐허를 기꺼이 인정하고, 그 위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시는 은혜의 주님께 너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겠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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