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며 걷는 자의 영성 (요한복음 19장)

경계하며 걷는 자의 영성

요한복음 19장


15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31 유대 사람들은 그 날이 유월절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그 시체의 다리를 꺾어서 치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 안식일은 큰 날이었기 때문이다.

1. 우상숭배와 율법주의의 기괴한 이중주

요한복음 19장의 이 두 장면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차라리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한 장면에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우리에게는 황제 밖에는 왕이 없다"고 외칩니다. 이는 '쉐마 이스라엘', 즉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신 6:4)라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 자체를 내던지는 신학적 파산 선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이라는 우상을 지키기 위해 로마 황제라는 또 다른 우상 앞에 스스로 무릎 꿇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둘 수 없다"며 율법의 세부 조항을 지키기 위해 빌라도에게 달려갑니다. 방금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 권력에 팔아넘겨 죽게 만든 그들이 이제는 [[율법의 형식]]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의 경건함을 증명하려 합니다.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을 짓밟은 후에 [[율법의 조항]]으로 자신의 죄를 가리려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의 [[신앙의 이중성]]이 얼마나 정교하고 기괴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상숭배와 율법주의, 이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선율이 자기보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섬뜩하게 이중주를 하고 있습니다.

2. 복음이 아니라 내가 복잡합니다

대제사장들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손가락이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수많은 주인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전쟁터입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이 너무 복잡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복음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신앙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복음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나의 안전과 평판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대제사장들처럼 우리 역시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종교적 행위라는 편리한 도구를 사용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복잡성]]이며 우리 실존의 한계입니다.

3. 경계하며 걷는 자의 영성

그렇다면 이 복잡한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따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무 자르듯' 단번에 끊어내는 영웅적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결단이 얼마나 쉽게 무너졌는지 우리는 기억합니다. 오히려 제자도는 "깨지기 쉬운 유리막" 같은 나의 결단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경계하며 걷는 자의 영성]] 을 발견합니다.

'경계하며 걷는 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교만하게 질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언제든 다른 길로 빠질 수 있음을 알기에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유지하려 애쓰는 순례자입니다. 그는 신앙이 위대한 업적의 쌓아올림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십자가를 향해 방향을 바로잡는 끊임없는 과정임을 압니다.

"반보라도 좋으니 그리고 느려도 좋으니 심플하게 예수를 따르고 싶다." 이 소박한 갈망이야말로 '경계하며 걷는 자의 영성'의 핵심입니다. 나의 복잡함과 죄성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나의 의지가 아닌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게 됩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며, 완벽함이 아니라 진실함이 중요합니다. 대제사장들의 자기 확신에 찬 커다란 외침 가운데 우리의 기도는 "주님, 제가 오늘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게 하소서"라는 연약한 속삭임입니다. 바로 그 연약함 속에서 주님은 당신의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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