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아이러니, 진리의 십자가 (요한복음 18)

권력의 아이러니, 진리의 십자가

요한복음 18장


31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유대 사람들이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지를 암시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그리된 것이다.

37 ... 진리에 속한 사람은, 다 내 소리를 듣소.

38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이오?"

1. 숨 가쁜 서사 속 멈춰선 한마디

요한복음의 서사는 18장에 이르러 숨 가쁘게 내달립니다. 기드론 골짜기에서 대제사장의 집을 거쳐 빌라도의 법정까 모든 사건이 휙휙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 질주 속에서 편집자 요한은 마치 시간을 멈춘 듯 하나의 '정지된 화면'을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이 한 문장에는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거대한 프로젝트의 검은 속내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신학적 외피를 걷어내고 보면, 예수의 죽음은 명백한 정치적 사건입니다. 예수의 '표적'들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권위의 현현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권위가 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의 이상적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지만 정작 메시아가 등장하면 안 되는 사회, 이것이 당시 유대 권력층의 비극적 딜레마였습니다. 그들의 권력은 실재하지 않는 '최고 존엄'을 관리하고 해석하는 데서 나옵니다. 진짜 최고 존엄이 나타나면 그들의 자리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는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법은 그들에게서 사형 집행권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로마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교활한 자기 연민이자 정교하게 설계된 여론 재판의 서막입니다.

2. 악의 프로젝트, 주권의 신비

그러나 이들의 고백은 그들이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진실을 폭로합니다. 요한복음 특유의 신학적 아이러니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그들은 '법적 권한'의 부재를 말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의 진리를 듣습니다. 그렇다, 너희는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앞에서 생명을 앗아갈 그 어떤 권한도 없다. 인간의 악한 의도와 계획은 결국 하나님의 더 큰 주권 아래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입니다.

편집자는 곧바로 이 아이러니를 신학적으로 해설합니다(32절). 유대 지도자들의 악한 프로젝트는 역설적으로 예수께서 예언하신 어떠한 죽음(유대인의 투석형이 아닌 로마의 십자가형)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인간의 죄의 책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분명 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신비는 그 악마저도 당신의 구원이라는 거대한 직물의 한 올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이성은 이 둘을 완전히 조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간의 가장 악한 계획이 하나님의 가장 선한 뜻을 이루는 데 쓰였다는 [[십자가의 신비]]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월권을 멈추고 잠잠히 경외할 뿐입니다.

3. 십자가, 표적의 완성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는 표적을 행하셨지만, 역설적으로 그 표적 때문에 죽음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모든 표적들은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 즉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손가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진리는 보지 않고, 손가락이라는 현상 자체에 열광하거나 혹은 그것을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습니다. 표적의 외면(사건)과 내면(의미)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마지막 표적이 되어 표적의 외면과 내면을 하나로 만듭니다. 십자가라는 사건(외면)은 곧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이라는 진리(내면) 그 자체입니다. 더는 분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사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가 된 현현(顯現)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는 "진리가 무엇이오?"라며 묻는 권력자 빌라도 앞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완전하고도 영원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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